이별 후, 1551일간 '나'를 따라 다녔던 유령을 마주하며
<고스트 블루스> 저자 마담 비
허상범 기자
kwonho37@daum.net | 2019-10-21 23:05:44
책 소개
[고스트 블루스]는 마담 비 작가의 산문집이다.
책은 이별 그 후, 1551일간 '나'를 따라다녔던 유령을 마주하며 써 내려간 글들을 담았다. 또한 중간중간 글을 새롭게 해석하여 그린 10장의 일러스트도 엽서의 형식으로 함께 수록되었다.
작가는 모든 사람들이 곁에 '유령'을 달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유령'이라는 것은 괴담이나 공포영화에 나오는 것이 아닌 잊지 못하는 기억 혹은 감정을 말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이미 실체를 잃어버렸으나 계속해서 우리의 머릿속을 불투명하게 떠다니는 그 무언가를 작가는 '유령'이라 명명하였다.
2014년 겨울, 가장 아름답고 절실했던 사랑이 끝난 후 작가는 유령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그는 오랫동안 그것의 정체에 대해 의심하며 짧을 글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1151일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에야 마침내 그것이 유령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제는 그 '유령'을 바라본 기록을 세상에 공개함으로써 그를 자신의 곁에서 떠나보내고자 한다.
마담 비 작가의 [고스트 블루스]는 과연 우리는 어떠한 유령을 마주하며 살아가는지 돌아보게 한다.
저자 소개
저자: 마담 비
목차
총 60페이지 (일러스트 엽서 10종 포함)
본문
유독 햇살이 좋은 날이었다. 아직 찬 공기가 뺨을 할퀴고 지나가는 계절이었지만 그날은 햇볕이 따스하게 내려앉아 꼭 봄이 찾아온 것만 같았다. 우리는 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도 나는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걸 은근히 예감하고 있었다. 슬펐지만 그럭저럭 참을 만했다. 나는 계속해서 웃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을 때, 왈칵 터진 눈물이 짠맛이 떠오르면 정말로 힘들 것 같았기 때문에.
결국 마지막까지 울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슬픔이 덜해지진 않았다. 마지막 모습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바람에 오히려 더 괴로웠다. 아름다운 끝을 위해 참았던 말들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견디기 힘든 날들이 이어졌다. 처음이었다. 정리하지 못한 사랑이 너무 많이 남아 나를 짓누르는 것은 정말로 태어나 처음으로 겪는 일이었다. 성난 파도처럼 몸을 키운 슬픔은 나를 완전히 집어삼켰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후에도 쉼 없이 너를 앓았다. 행선지를 잃은 사랑은 길을 잃은 채, 내 마음속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는 것의 연속이었다. 어둠이 깔릴 즈음의 시각이면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너에 대한 생각이 끊이지 않아 잠들기가 힘들었다. 전할 수 없는 마음은 흘러넘쳐 어둠 속으로 흘러갔고, 곧 어둠 속에서 네 모습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무서웠다. 매일 밤, 방에 내려앉은 새까만 어둠이, 네 생각이 나를 덮쳐 짓누르는 상상을 하며 엉엉 울었다. 어느새 너는 내게 두려운 존재가 되어 있었다. 어둠 속에서 나를 괴롭히고 위협하는 유령처럼.
무섭다고, 슬프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모두 나에게 유령 따위는 금방 사라질 거라고 했으니까. 아무도 내 주위를 떠도는 유령의 존재를 진심으로 믿지 못했다. 나는 이제는 형태를 잃어버린 그 존재를 설명하고자 부단히 애를 썼지만, 끝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그것을 여전히 몸에 두른 체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나는 혼자서 유령과의 사투를 시작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매일 밤 어둠 속에서 넘실대는 유령에게 집어 삼켜지지 않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잔뜩 몸집을 부풀려 위협하는 유령을 똑바로 마주하기 위해.
그렇다. 너와 마지막으로 만난 그날 이후, 나는 1,551일, 그러니까 꼬박 4년 하고도 91일간의 시간 동안, 너를, 지독하기 짝이 없는 그 유령과 사투를 벌여 왔다.
그리고, 이제 나는 이 지독하기 짝이 없는 유령을 떠나 보내고자 한다.
- 유령, 6페이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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