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록 형식으로 담은 일상 속 가장 내밀한 시적 순간

<지구 종말과 인간 말종 회의> 저자 우정

허상범 기자

kwonho37@daum.net | 2019-10-31 17:31:46


책 소개


[지구 종말과 인간 말종 회의]는 우정 시인의 시집이다.


고딕(Gothic). '몇 월 며칠'의 일상 속에서 발견한 가장 내밀한 시적 순간을 일기록 형식으로 담았다. 무심코 지나가는 일상의 순간, 가장 내밀하고 치열한 시간을 고딕이라는 장르로 해석한 시집이다. 3년 동안 일기만으로는 지나칠 수 없는 개인의 일상과 일상 속에 침투한 역사적 순간을 봄부터 겨울까지, 1일부터 31일까지, 0시부터 24시까지 60여 편의 시로 남겼다.


시인은 예언서나 묵시록 같은 느낌을 살려 시 전체가 회의록, 일기록 형식을 따랐으며, 독립출판물로 처음 쓴 시집 [서울사람들]의 '0, 1, 01'이라는 시의 시구에서 제목을 따와 '지구 종말과 인간 말종 회의'로 지었다.


시인은 말한다.


"하수구 아래를 하염없이 보는 검은 길고양이, 한 그루처럼 얽혀 있는 벚나무들, 옥상 위의 휘어진 나무... 일상 속에 있는 고딕(Gothic)입니다. 뾰족한 첨탑의 교회 건축과 괴기로운 것, 어딘지 어둡고 서글픈 내면과 비참한 서정이 특징인 '고딕'이라는 장르를 시로, 시집으로 승화하였습니다."


[출처: 다시서점]

저자 소개


저자: 우정



시인이자 로망시에(romancier)입니다. 시집 [서울사람들], 소품집 [리얼 로맨티스트], 수필집 [분홍으로 물든 나날]을 썼습니다. 출판사 '서울로망'을 운영 중으로,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고딕과 오컬트, 록과 퇴폐미를 추구하며 장르적인 모호함을 꿈꾸고 있습니다. 혼자 놀기의 신이자 반항 정신의 장인이기도 합니다. 현재는 문예동인 [데카당스;DECADENCE];DECADENCE]에 홀로 소속되어 있습니다.


목차


9월 9일 묵시의 기록 11 / 9월 10일 종말의 풍경 13 / 10월 1일 점과 별 14 / 10월 3일 No need proof 15 / 10월 5일 사나운 꿈자리 17 / 10월 10일 1010 19 / 10월 30일 설거지 그네 20 / 11월 14일 서울의 밤 21 / 11월 22일 끼리끼리 22 / 12월 1일 몰지식 리얼리즘 24 / 12월 12일 그림자의 도시 25 / 12월 25일 무덤의 주인 32 / 1월 8일 살아남은 자들의 시(時) 33 / 1월 14일 비슷한 것 35 / 1월 16일 보랏빛 36 / 1월 17일 떨기나무의 기적 38 / 1월 18일 살아남은 자들의 도시 39 / 1월 23일 강풍이 부는 날 40 / 1월 26일 죽인 것 41 / 1월 30일 시계, 사계, 그리고 공통분모로서의 세계 42 / 2월 8일 아들의 충고 46 / 2월 15일 테이블 47 / 2월 16일 빗소리 48 / 2월 19일 백서(白書) 49 / 3월 4일 희망 50 / 3월 6일 갇힘 52 / 3월 7일 버스 안에서 53 / 3월 27일 먼지 속 54 / 4월 4일 절대적 절대 55 / 4월 5일 떡갈고무나무 56 / 4월 11일 시 57 / 4월 12일 서(書) 58 / 4월 13일 성(城) 59 / 4월 14일 첫번째집 순대국 60 / 4월 15일 없으므로 62 / 4월 16일 격렬하게 불타는 곳 63 / 5월 5일 지나가는 길 64 / 5월 8일 심연 65 / 5월 14일 장미의 이름으로 66 / 5월 15일 법 앞에서 67 / 5월 30일 에어컨을 껐다가 껐다가 69 / 6월 6일 현충일 70 / 6월 7일 밤의 바다와 별의 주인 71 / 6월 9일 고전적이면서 현대적인 것 72 / 6월 18일 청춘 74 / 6월 22일 불면과 불멸 75 / 6월 24일 가로수 길 위에서 76 / 6월 25일 세로로 긴 직사각형 78 / 7월 2일 냉장고 파먹기 79 / 7월 15일 개미들 80 / 7월 18일 의인들 81 / 7월 25일 검은 녹초 83 / 7월 30일 오래된 영화 84 / 8월 8일 술과 담배와 나타샤와 행인 85 / 8월 9일 평행 우주를 그리며 86 / 8월 11일 모차르트와 괴테, 그것도 아니면 실비아 플라스 87 / 8월 30일 Way Weapon 89 / 9월 11일 슬픈 것 90 / 9월 25일 아무 말로 지은 시 91 / 9월 30일 점을 통과하는 목차 92


본문


"지지 않는 장미란 없다"



피어나는 장미 꽃잎


차곡차곡 떨구다 보면


뼈대처럼 드러난 꽃대만 남기고


사라져 가는 장미 땅 위에서


땅속으로 흩어져 녹아드는 장미 일반의 생


아니면 활짝 핀 장미


줄기째 자른 장미


유리병에 꽃아 말린 장미


검붉게 멈춰버린 장미


피를 서서히 말린 장미



지지 않는 장미란 없지만


어떤 장미는 영원히 지지 않으리


죽어서도 지지 않으리



- 5월 14일 장미의 이름으로, 66페이지 중에서 -


검은 바다로 끌려 들어가는 신부


계곡을 따라 물의 길을 내는 신부


별 무리가 혜성의 꼬리처럼 불을 밝히고


빛을 따라 쫓아오는 늑대 한 마리


굴속에서 매끈한 고기가 되어


별이 기포로 물결치는 바닷속을 헤엄치자


왕이요 왕 지하의 왕입니다 왕의 행차랍니다


검은 바닷속 별의 주인은 신부랍니다


연분홍 부푼 부표 해파리 조명 삼아


고시래기 머리칼 길게 늘어뜨리고


별빛 녹아 흐르는 눈 빨간 산호초 입술로


서약하는 우리의 신부


검은 바다를 헤엄치는 나의 신부


말갛고 말간 무덤의 신부



- 6월 7일 밤의 바다와 별의 주인, 71페이지 중에서 -



푸릇한 건초에 부슬부슬 검은 비가 내려


올라앉은 첨탑에 짙은 안개 피어오르면


오늘은 검은 녹초 이끼처럼 흐늘거리는


머리카락을 쓰고 우산 아래 걷는다 꿈인 양


꿈 아닌 양 축축한 안개와 미끈거리는


신발을 신고 검은 녹초가 되어


젖은 날개로 날아오르리


- 7월 25일 검은 녹초, 83페이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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