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과 논픽션 사이의 연애, 사랑에 관하여
<우린 얼마나 많은 88번 버스를 놓쳤는지 몰라> 저자 짓
오도현
kwonho37@daum.net | 2019-10-26 21:09:57
책 소개
[우린 얼마나 많은 88번 버스를 놓쳤는지 몰라]는 짓 작가의 에세이다.
작가는 말한다.
"우리는 매일 도로 위를 달리는 버스들을 타거나 지나칩니다. 그 수많은 버스 중 유독 잊혀지지 않는 버스가 있습니다. 버스를 기다리고, 타고, 놓치며 다양한 상황들을 경험합니다. 버스와 관련된 상황들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흔한 에피소드일 수 있습니다.
연애도 그리고 사랑도 그렇습니다. 누구나 경험하지만 잊혀지지 않는 버스처럼 남은 기억들을 픽션과 논픽션 사이 그 어딘가에서 써 내려간 책입니다."
짓 작가의 에세이 [우린 얼마나 많은 88번 버스를 놓쳤는지 몰라]는 독자들에게 사랑에 대한 물음과 고찰을 건넨다.
저자 소개
저자: 짓
목차
들어가면서
잊혀지지 않는 버스처럼 7
01 일어날 기 起
평범한 하루가 특별해지는 15 / 가벼운 엉덩이 17 / 내 젊음은 네거야 18 / 너를 선택하기 위해 나는 10년 뒤 죽기로 했어 22 / 너는 무조건 반사야 25
02 이을 승 承
우린 얼마나 많은 88번 버스를 놓쳤는지 몰라 29 / 굽든 삶든 너는 오징어 31 / 퇴근길 내가 만난 건 너와 내가 아니었을까 32 / 전력질주 36 / 네 기도에 내가 있을까 38 / 이혼할 수 있을 때 결혼할 거야 40 / 햄스터가 키우고 싶어 42
03 구를 전 轉
남은 사랑이 내 안에서 곪지 않게 47 / 널 잃는 것보다 세상을 잃는 게 나아 49 / 엄마, 아빠가 싸우는 모습에 어린 너와 내가 보여 50 / 나아갈 수 있는 대답 54
04 맺을 결 結
너는 3개월, 나는 10개월 61 / 그 하나가 나를 웅크리게 만들어 62 / 눈물 젖인 달 63 / 4차산업혁명 64 / 혼자 청계천을 걷는 이유 66 / 오롯이 나를 위해 69
05 다시 일어날 기 起
나는 다음에도 이렇게 사랑할 거야 73 / 남겨놓은 88번 버스정류장 75
본문
너에게 끌렸다. 하지만 나도 앞자리가 바뀐 이상 사람만 보고 널 선택하기에 걸리는 것들이 많았다. 너는 부족한 것들이 많았다. '나는 얼마나 잘나서 그걸 따지냐.'는 스스로에게 하는 반문이 내 마음속에 울렸다. 난 지금도 그리고 그때도 너무나도 너보다 더 부족했다. 그래서 내 앞날이 불안했다. 못된 생각이지만 솔직한 마음으로 여러 조건을 따지고 쟀을지도 모르겠다.
을지로에서 만난 희윤은 말했다. "나는 45살에 죽을 거야. 죽음을 너무 나쁘게 생각할 필요 없어." 희윤은 회사를 다니기 전 국토대장정을 했을 정도로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행복한 피글렛' 이라는 별명을 가진 긍정적인 친구였다. 나는 말했다. "45살은 너무 빠르지 않아? 인생이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살아있으면 즐거운 일들이 많지 않을까?"라는 근거가 있는 듯 없는 말을 희윤에게 뱉었다. 그 순간 생각이 반짝였다. 희윤의 말은 직업도, 돈도, 집도, 애인도 없는, 가진 게 없어도 무거웠던 나의 인생을 가볍게 만드는 달콤한 말이었다.
'10년 뒤에 죽는다면' 이라는 가정(假定)은 집, 직업, 돈, 명예에 대한 고민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했다.
10년 뒤에 죽는다면
좋은 곳에 있는 큰 집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10년 뒤에 죽는다면
사회적으로 보기 좋은 직업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10년 뒤에 죽는다면
장기간 안정적으로 다닐 회사가 무슨 소용 있겠는가.
10년 뒤에 죽는다면
조건 좋은 배우자가 무슨 소용 있겠는가.
10년 뒤에 죽는다면
저축해 놓은 돈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 너를 선택하기 위해 난 10년 뒤 죽기로 했어, 22페이지 중에서 -
"엄마, 아빠가 행복해 보이지 않아서,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
라는 말을 나의 엄마 난영에게 툭 뱉어 버렸다. 나는 또 난영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결혼을 할 생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혼을 위한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머리가 굳어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가지고 있던 내 결혼관이었다. 결혼을 안 하겠다는 자녀를 가지고 있는 기성세대들은 자녀들에게 결혼을 강요하기 전 자신의 결혼 생활을 돌아보라고 말하고 싶다.
어린 시절 결혼이라는 것을 가장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곳은 TV 드라마, 순정만화 연애 소설도 아닌 부모님의 결혼 생활이다. 남자라면 아버지에, 여자라면 어머니에 자신을 대입해 볼 것이다. 머리가 더 커지기 시작하면 다른 성별의 부모를 부모가 아닌 배우자로서 판단하고 평가할 것이다. 나의 아빠 태원은 아빠로서는 최고의 아빠라고 자부하지만, 배우자로서 좋은 남편은 아니었다.
- 엄마, 아빠가 싸우는 모습에 어린 너와 내가 보여, 51페이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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