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서 봄이 지나가는 시간 속에 써 내려간 사적인 말들
<너무나도 사적인 말> 저자 지혜
김미진 기자
kwonho37@daum.net | 2019-10-21 00:00:45
책 소개
[너무나도 사적인 말]은 지혜 작가의 에세이이자 생활 메모집이다.
작가는 생활 메모집을 '여기저기에 남긴 메모, 나눈 대화를 엮은 일상의 소회[所懷]'라고 말한다.
2019년 1월부터 4월 동안의 기록을 모은 [너무나도 사적인 말]은 겨울에서 봄이 지나가는 시간을 보내며 써 내려간 사적인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버틸 수 있는 정도의 힘이 되어주길 작가는 희망한다.
저자 소개
저자: 지혜
평범한 장면에 한 번 더 눈길이 갑니다.
작은 움직임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목차
총 60페이지
본문
전부 지나가고서
겨울만 남았다.
철 지난 감정은
겨울에 듣는 여름의 노래
이제는 반듯하게 접어
서랍 속으로 정리해야 하는
반팔 티셔츠 같은 것.
내리는 사람은 없고
타는 사람만 있는
만차 버스에 서 있었다.
- 외출, 2페이지 중에서 -
누군가 펼치고
다시 접어 놓은 신문에서
오늘의 운세를 봤는데
헤어진 사람이
돌아올 운세라 했다.
헤어진 사람은 너무 많아
아무도 다시 돌아오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했다.
겨울을 좋아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 2月, 16페이지 중에서 -
그간 잘 지내고 있었니. 나는 창밖에 모든 풍경이 잘 보이는 바 자리에 앉아 네게 편지를 적고 있어. 하얀 셔츠를 단정히 입고 나와서.
어느덧 2월이야.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니. 나는 때때로 건강하고 때때로 약해짐을 느껴. 한없이 좋을 때는 큰소리로 웃어 보이다가 또 어떤 날은 터지려는 울음을 꾹 참고 걷다가, 집으로 돌아와 펑펑 울어버리기도 해. 그리고 이거 어떻게든 살아지는 거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곯아떨어지지.
나 곧 새로운 곳으로 출근해. 이전에 하던 일과 비슷한 일을 하게 될 것 같아. 낯선 동네 새로운 환경에 새로운 사람들. 이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일에는 제법 당황하거나 떨지 않고 잘 해내는 것 같아. 그리고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것이. 앞으로 일을 하면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내게 기쁨을 주고 동시에 괴로움을 안기는지도, 사람은 얼마나 충만함을 주는 동시에 쓸쓸함을 주는지도 짐작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
하지만 짐작만 할 뿐, 그것에 대해서 나는 언제나 손쉽게 흔들리고 가라앉고 잠기지. 이런 고백을 하는 이유는 나는 네가 어딘가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는 사람이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그래.
우리는 전처럼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고, 볼 수 없으니 손을 맞잡거나 눈을 마주치면서 대화를 할 수도 없지. 하지만 네 존재만으로도 힘을 얻어. 멀이 떨어져 있지만 너도 어느 저녁엔가 나를 한 번쯤은 생각해줄 것만 같고 그래.
- 에게, 21페이지 중에서 -
맑게 갠 하늘에 갑자기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면서 동시에 펑펑 내리는 눈을 맞고 서 있자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건물 아래로 잠시 몸을 피했다. 세상에는 이해도 안되고 설명도 안되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그저 '모르겠어' 라고 작게 말한 뒤에 어깨를 한번 들썩이고 말아야겠지. 버스 안에서 잠시 두 눈을 감았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괴로운 일에는 되도록 적은 시간을 할애하고 싶은 것이다.
- 출근길, 41페이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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