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늬'란 얼마든지 채울 수 있는 삶의 가능성
<그날의 바람엔 작은 공무늬가 가득했다> 저자 채은
허상범 기자
kwonho37@daum.net | 2019-09-03 20:25:36
책 소개
[그날의 바람엔 작은 공무늬가 가득했다]는 채은 작가의 장편 소설이다.
소설의 내용은 스물셋 이설이 윤수를 찾으러 해방촌으로 간다. 어릴 적 제주에서 처음 만났던 윤수. 가족으로부터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이설에게 윤수는 새 숨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런 그를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이설은 간절히 찾아헤맨다. 나아지기 위해 애쓰지만 그럴수록 퇴보하는 삶. 고독하고 처절한 일상의 폭력에서 이설은 과거의 기억 속에 부서지지 않는 법을, 바다에서 헤엄치는 법을 깨닫고 자신만의 동화를 써 내려간다.
책 제목의 '공무늬'는 비어있는 무늬이다. 작가는 말한다. '공무늬란 얼마든지 채울 수 있는 수많은 공간이 있다는 뜻이다. 삶의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분명, 삶에서 겪은 커다란 상처가 빼앗아간 소중한 것이 있던 공간은 휑하니 비워졌을지라도, 오히려 그것은 또 다른 새롭고 소중한 것들로 삶을 채우고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인 것이다. 채은 작가의 [그날의 바람엔 작은 공무늬가 가득했다]는 많은 이들의 다정한 손길이 되어 줄 것이다. 윤수가 이설에게 그랬던 것처럼.
저자 소개
저자: 채은
주관적 세계의 이상한 이야기를 옮겨적는 소설가.
움직이는 동력은 의미가 유일하다.
이제는 길을 잃고서 가끔 춤을 추기도 한다.
2018년, 7년 동안 써 온 장편소설 [그날의 바람엔 작은 공무늬가 가득했다]를 독립출판했다.
2019년 단편소설선 [불안]시리즈를 독립출판했다.
목차
1. 제주 - 8
2. 서울 - 82
3. 물 - 150
에필로그 - 220
본문
- 나는 있지, 뱃속에 거북이 알을 품고 있어요.
바닷결이 바람처럼 휘몰아치던 제주, 윤수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거짓말처럼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아서 괜히 먹은 걸 다 토해내고 싶은 기분이었다.
- 거북이에게 강간을 당했거든요.
사람이 알을 낳는다니 웃기지도 않았다. 다들 비웃으리라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나는, 내 삶은 조롱거리로 삼기에 마땅한 것이 이미 되어버렸는데. 이제 와 변명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텐데, 너무 많이 지나쳐버린 지금, 나 스스로도 믿지 못하게 되어버렸는데.
- 나는 이제 어쩔 수 없이 그럼 사람이 되었어.
윤수는 손도 내밀어주지 않고 그저 나를 보았다. 윤수는 바다도 삼키지 못할 무언가를 가진 사람처럼 보였다. 그것이 견고함이든, 바다보다 더한 혼돈이든, 고작 열일곱인 나는 그 순간 그에게 모든 걸 던지고 싶었다.
세상에는 그런 류의 것들이 있다. 무슨 짓을 해도 바꿀 수 없는 것들. 인간에게는 누구나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킬 어떤 점(点)이 운명의 길목에 놓여있다. 그 점에 다가가기 직전까지 인간은 경고등도 무시한 채 과속하듯 내달리다가, 딱 그 점을 지나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뀌는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를 정의해온 말까지도.
- '점은 그냥 지나쳐지지 않는다', 10페이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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