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n잔의 취함] 5회 덕업일치

좋아서 하는 일로 돈까지 벌 수 있다면

유승빈

kwonho37@daum.net | 2019-12-26 22:15:00

좋아서 하는 일로 돈까지 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취미생활과 일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이전까지는 즐겁기만 했던 취미가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되어버리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먹고 사는데 아무 지장이없을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있다면 취미로 소소하게 돈벌이를 하는 것도 괜찮겠지만, 보통은 현실의 장벽에부딪히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나도 술 취미를 발전시켜 바텐더가 되어볼까 하는 큰 꿈을 가졌다가 지금은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다. 술로 돈을 버는 것보단 돈을 벌어 맛있는 술을 맘껏 마셔야지.




취미를 직업으로 발전시키려다가 마음을 접은 적이 몇 번이나 있어서인지 소위 말하는 ‘덕업일치’를 이뤄낸 사람들을 보면 마냥 부럽고 동경하게 된다. 한창 맥주에 빠져 살던 대학생 시절, 학교 앞에 ‘투욀’이라는 양조장의 맥주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작은 펍이 생긴다는얘기를 듣고 후다닥 달려갔던 적이 있다. 지금은 꽤 유명해진 편이지만 당시 한국에서 투욀의 인지도는높은 편이 아니었고, 매니악한 맥주도 많은 편이라 투욀의 맥주만 단독으로 판매한다는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사장님이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매장을 내는 것일까하는 궁금증도 있었는데,알고보니 같은 과 한 학번 선배였다. 투욀을 좋아하는 맥덕이었던 이 선배는 결국 학교 앞에투욀 전문 펍을 열어버린 것이다. 맥주를 업장 납품가로 받아 마시기 위해 가게를 연 것이 아닌가하는의심이 크긴 했지만 그래도 꽤 오래 영업했던걸 보면 장사도 안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 선배는 본업인교육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어쨌든 덕업일치를 이뤘던 사람으로 내 뇌에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다.



사실 맥주가 좋아서 펍을 연 경우는 굉장히 많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더 나아가 직접 맥주를 양조하고, 이를 토대로 양조장을 개업하는 경우도 있다. 집에서 양조하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공장을 차려 버리는 것. 개인적으로굉장히 좋아하는 네덜란드의 브루어리 ‘드 몰렌’도 이런 케이스다. 창고 관리인이었던 메노는 홈브루잉을 할 정도로 맥주에 푹 빠져있었는데, 그매력 때문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드 몰렌이라는 양조장을 차리게 되었다. 네덜란드 시골의 작은 풍차아래서 시작한 드 몰렌은 점점 규모를 키워 지금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양조장이 되었고, 전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덕업일치를 통해 성공한 사례들을 보다 보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게 된다.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던 대학생 때에는 독일 뮌헨대학의 양조학과에 들어가서 양조 기술을 배운 후, 한국에서 자체 브루어리를 만들겠다는 원대한 포부도 가지고 있었다. 지금생각해보면 참 현실성 없는 꿈을 꾸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기에 꿈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지도. 지금은양조장을 만들겠다는 꿈은 접고 언젠가 동네에 작은 바를 열어 손님들이 편안하게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다. 그 때 쯤이면 나도 덕업일치를 이룰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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