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 기획: 캘리시인을 찾아서] 5부 사랑꾼 이야기 - 삐딱구두,소아최이정,이정순,박종미
이용환
kwonho37@daum.net | 2019-11-14 16:18:00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들 한다. 좋은 말이다. 그런데 그 유례는 어디서 시작된 걸까.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가지고 있는 뜻을 세밀히 들여다보니 그 의미를 알 것 같다. 봄의 기운으로 새싹이 나고 여름이 되어서 꽃이 피고 가을에 열매를 맺어서야 겨울을 씨앗으로 날 수 있는 자연의 숨 깃든 사실을 이해하고 나니 아! 그렇구나 싶다. 숨을 내쉬는 모든 것에는 겨울을 날 준비를 해야 한다.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비축해야 하니 가을은 기운을 수렴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유독 붉은 노을과 선선한 바람 낙엽 지는 풍경은 책을 읽기에 더없이 좋지 아니한가. 말했듯 기운이 수렴한다 했으니 가을에야 말로 은유와 깊은 뜻이 녹아내린 시의 계절이라 할 수 있겠다.
그 계절을 맞아 가을한 풍경이 sns를 통한 캘리 작품에서 가을이 한창이다. 더없이 사랑하기 좋은 계절을 틈타 여러 색깔의 사랑이 붉게 노을 진다. 아름다운 사랑 뜨거운 사랑 아쉬운 사랑 귀여운 사랑. 그 사랑 이야기를 젊은 작가들의 문장과 깊이 있는 캘리로 가을의 문을 열어 볼까 한다.
가장슬픈 계절엔 네가 없었다
문장 하나가 계절을 대변한 시가 되었다. 어떤 슬픈 계절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어떤 계절에도 네가 없었기에 온기 있을 수 없었다. 여름조차도 봄이 오건 노을이 지건 눈이 내리건 무의미하게 슬픔 하나로 채워진 그 해. 분명 마음에는 바람이 불었을 텐데 붓의 획에는 마음 무거움과 그 공허한 바람결이 동시에 그려졌다. 저 멀리 보이는 외로운 섬 하나 떠있는 모습. 가라앉지 못한채 언젠가 육지로 이어질 배하나 그리운가 보다. 편지 한 통 소식 한번이면 그간 슬퍼만 하고 지내야 했던 숨죽였던 시간들이 안개 걷히듯 밝았을 텐데. 가장 슬픈 사실은 네가 없는 것은 물론 너는 무엇하는지 알 수 없는 기척 없는 소식 때문이겠지.
무언
문득 무언가
머릿속 떠올라
들뜬 맘 달려가
고하고 싶을 때
대상이 없는 건
쓰리고 아프다
때 지난 물음은
무언으로 박히고
때 지난 사랑은
울음으로 헐떡인다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남겨졌으나 가질 수 없고. 떠올랐지만 수면에 가라앉는다. 아프다. 그냥 무언 하게 저리다. 묻고 싶지만 봉해버린 소식은 가슴에 무언가 박혀버렸다. 헐떡이지 않고서는 울음조차 낼 수 없다. 사랑은 사람을 그립게 그늘지게 한다. 마음에 난 창을 두고 뚫어지게 바라보며 외쳐보지만 공허하다. 나 홀로 불 꺼진 방에 그 마음 비추는 것은 허무하며 결국 내게 남은 건 울음 그치려 했던 눈물자국. 그 희미한 그때의 그 사람은 내겐 어두워도 꽃으로 피어났다. 문장과 캘리가 대작의 전시 작품이 됐다. 이 모든 전율이 그 미묘 복잡한 마음을 캘리로 무겁게 완성시킨 그 작업의 현장이 무엇보다 무언을 대표한다. 숨 쉴 수 없이 필자도 글을 겨우 이어간 것처럼.
비정규직
사랑한다는 단순 조건 아래,
언제 해고 당할지도 모르고
네 손을 잡으며 얼굴을 쳐다보았을 때
너는 빈곤의 낮빛으로 웃고 있다
우리는 정해지지 않는
계약기간 동안 사랑하고 있다
가장 젊은 청춘의 두 가지 아픔. 사랑하기에는 미래가 불투명한 현실성. 그래도 사랑 없이 살아갈 수 없다. 이끌림이 그 사람을 선택했고 그에게 나의 온 마음으로 하루 24시간 향했지만 깊은 눈동자에 비치던 나의 모습은 언제 그칠지 모르는 웃음으로 대신했다. 그 웃음기에 잠시 미소를 머금는듯 했지만 둘 중 한 사람은 표정을 거둘 것 같이 둘은 사랑을 한다. 어쩌면 사랑은 불확실성이다. 지금의 불꽃이 영원할 것 같은 달빛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맘만 뜨거울 뿐이지. 잠시 우리는 그 사랑을 명함처럼 증거 하는 기간을 둔다. 그 명함이 나의 직위와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듯 비정규 한 상황을 너무 절실히 나무처럼 심어 보였다. 더 애써 둘러 화려하게 문장을 꾸미는 것 보다야 언제든 그 자리에서 무성히 자란 잔디는 또 반듯이 깎여져야 하는 것처럼 청춘의 사랑은 언제나 현재를 대변한다. 저 작은 명함 같은 캘리처럼.
내 세상
너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보면
세상에
빛도
소리도
향기도
다 사라지고
너만이 세상 유일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이내 곧
내가 이 세상이 되어버린다
태초에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 함께 했던 시간의 전부는 서로였다. 그 동산이 안식처가 아닌 서로를 의지했던 순간이 신세계였고 앞으로도 함께 하고픈 세상이었을 거다. 선악과를 베어 먹음과 동시에 추락한 세계로 떠나야 했지만 서로라는 세계가 있기에 그 어떤 곳에서도 사랑을 하며 자손까지 맥을 이어올수 있었으니까. 애초에 존재했던 천국 같은 빛도 소리도 향기도 다 사라지고 새롭게 시작되는 곳 어디든 너는 내게 유일한 사람이며 너는 나의 모든 것이기에 나 또한 세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 넓은 세계를 들여다보면 한 가지만 떠오른다. 그대 얼굴이다. 그저 한없이 바라보기만 해도 무엇도 필요 없듯이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너를 떠올리며 쓴 문장은 그저 네 얼굴을 바라보며 하고픈 이야기가 전부란 걸 그 넓은 여백에 네 얼굴 묘사 하나가 다 말해준다. 네가 그려진 순간 너를 향한 내 세상이 시작되는 것이니까.
[ⓒ 사회가치 공유 언론-소셜밸류.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