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떠나지 않고 이 자리를 지키기로 했다.

<여행을 쉽니다> 저자 수수진

허상범 기자

kwonho37@daum.net | 2019-08-20 22:57:39



책 소개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분 전환, 혹은 새로운 자극, 예술가의 경우엔 영감을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나라고 조언한다. [여행을 쉽니다] 수수진 작가 또한 사람들의 조언에 따라 여행을 자주 다녔다. 그림을 그리는 일에 있어 신선한 공간에 머물며, 새로운 것을 보고 느껴야 창작의 힘이 발현되고 영감이 떠오른다는 것을 굳게 믿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수수진 작가의 생각은 달라졌다. 오랜 시간 같은 자리를 지키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깊은 통찰력은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부터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작가는 [여행을 쉽니다]를 집필하는 1년 동안 여행을 쉬었다. 모두가 떠나라고 말할 때 오히려 집에서 '걸어서 닿는 거리'에만 머물렀다. 그리고 집 앞 편의점, 주인 없는 낡은 자전거 등 주변의 사소한 것에서 영감과 통찰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깊은 머묾을 통해 일상이 여행이 되는 순간을 차곡차곡 모은 수수진 작가의 에세이 [여행을 쉽니다]는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줄 것이다.






[출처: 스토리지북앤필름]



저자 소개


저자: 수수진



우연히 마케팅 트렌드에 관한 기사 하나를 읽었습니다. 거기에서는 '여행' 콘텐츠가 가장 영향력 있는 주제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1년간 이 책을 집필하면서 저는 반대로 여행을 쉬었습니다. 모두가 떠나라고 말할 때 오히려 집에서 '걸어서 닿는 거리'에만 머물렀습니다. 교통비가 줄었고, 말수도 줄었고, 만나는 사람도 급격히 줄어들었지만, 묵묵히 내 자리를 지키는 것에 대해 매일 같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건, 이 시간이 쌓여 여행이 되는 순간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내 주변의 아주 작은 것에 집중했을 때 얻어지는 것. 하물며 집 앞 편의점에서 파는 초콜릿 한 조각을 입에 넣는 순간도 여행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행을 쉬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행을 쉽니다.


목차


총 200페이지


본문


엉덩이가 얼마나 의자에 붙어있느냐에 따라 대학이 결정된다는 소리를 줄곧 들으며 자랐다. 미술 입시를 준비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대학은 엉덩이로 가는 것이었다. 물리적인 엉덩이는 꽤 무거운 편이지만 정서적인 엉덩이가 가벼운 관계로 나는 오랜 시간 의자에 앉아있지 못했다.


특히 연필 데셍을 하루 종일 하는 날이면 너무 우울해서 견딜 수 없었다. 웬만큼 완성된 것처럼 보여도 연필을 뗄 수 없는 길고 지루한 연습. 그래서 미술을 그만해도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야호!' 소리를 질렀고, 대학에 가서는 거의 공부를 하지 않았다. 주말마다 나가서 놀았고, 가끔은 밤새워 놀다 아침 해가 밝으면 귀가하는 패턴으로 꽤 오랜 시간 살았다. 엉덩이가 참으로 가볍디 가벼웠던 지난 시절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나는 떠나야 한다고, 나그네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어쩌면 그 시간이 있었기에 머묾의 때가 지금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금은 물리적인 엉덩이도, 정서적인 엉덩이에도 꽤 무게가 생겨서 오래 앉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도 힘들지 않다. 이렇게 오래오래 무거운 엉덩이로 살아가고 싶다.


- '엉덩이 힘!'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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