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을 섞어 만든 다섯 편의 단편 소설집
<단편 늠름음라봉> 저자 늠름음라봉
허상범 기자
kwonho37@daum.net | 2020-04-08 20:28:50
책 소개
[단편 늠름음라봉]은 창작집단 '늠름음라봉'에서 제작한 단편 소설집이다. 수록되어 있는 다섯 편의 단편 소설은 상상력을 섞어 만든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가벼운 듯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은 우리네 삶을 여실히 그려낸다. 본문에는 각 작품들에 걸맞는 일러스트도 함께 그려져있다.
창작집단 '늠름음라봉'은 말한다.
"[단편 늠름음라봉]도 다른 책들과 어우러져, 평범하고 잔잔한 서가의 구성원이 되길 바랍니다."
저자 소개
저자: 창작집단 늠름음라봉
목차
6 - 마녀
12 - 누가 젠젠의 마음을 훔쳤을까?
42 - 저명 할배
50 - 식빵 끄트머리 샌드위치
56 - 이퍼
본문
그가 훔친 물건을 선물하는 이유를 조금 알 듯했다. 훔친 물건을 선물함으로써 내가 그것을 얻기 위해 어떤 위험을 감수했는지 보여주는 것이었으리라! 너에게 그것을 줌으로써 훔칠 때의 쾌감을, 정수리부터 사타구니, 발톱 밑 살까지 흐르는 쾌감을 공유하는 것이리라! 사랑하는 이도 시시한 인생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도록 작은 쾌락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
아, 그러나 루팡은 더 이상 젠젠의 곁에 없었다. 사소한 문제였는데, 그 일로 젠젠과 루팡의 세계가 있는 힘껏 부딪혔다. 그 충돌로 둘은 하나 되지 못하고 튕겨 나가버렸다. 루팡은 그렇게 00문화를 나갔다.
젠젠은 편집실에서 루팡을 자주 회상했다. 그가 훔쳐줬던 장식품을 떠올렸다. 감자탕집에서 옛 연인을 그리며 오돌토돌한 휴지로 눈물을 찍던 루팡, 돈을 내지 않고 도망치던 우리를 떠올렸다.
루팡을 만났던 사람들은 그가 자신들에게 상실을 안겨다 주었다고 착각하곤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상실을 안긴 것은 루팡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의 공허함을 루팡의 탓으로 돌릴 뿐이었다.
- '누가 젠젠의 마음을 훔쳤을까?' 중에서 -
당시 난 세상을 바꾸는 일에 빠져있었다. 필요 없는 언덕을 깎는 일이었다. 자꾸 높아지는 언덕 탓에 언덕에 살지 않는 사람들은 많은 피해를 받고 있었다. 언덕 위에 사는 윗마을 사람들만 햇빛을 잔뜩 차지하고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흠뻑 맞았다. 아랫마을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햇빛과 비는 점점 줄어들었다.
아랫마을 사람 중 절반은 윗마을의 편에 섰다. 윗마을 사람들이 햇빛과 비를 나누어 주는 척했기 때문이다. 윗마을 사람들은 적선하듯 말하곤 했다. 힘들게 뭐하러 싸워. 가만히 있으면 우리가 이렇게 나누어 주잖아? 싸우는 것이 두려워 귀를 막고 입을 닫은 사람들은 언덕 아래에 모였고, 윗마을 사람들이 무언가 나누어 주길 얌전히 기다렸다.
언덕이 높아질수록, 윗마을 사람들이 위선을 떨수록, 그들에게 동조하는 아랫마을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아랫마을 사람들의 삶의 터전은 사라지고 있었다. 모두가 풍족하게 살기 위해서, 적어도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우리는 언덕을 깎아야만 했다.
- '이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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