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한번 해볼까] 3회 연애와 결혼의 온도차

김나영

kwonho37@daum.net | 2019-11-15 18:00:00

긴 연애가 끝나고 나니 서른두 살이었다. 결혼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았다. 대답은 '결혼을 하긴 해야 한다'였다. 나는 싱글로 늙을 자신이 없었다. 결혼 안(못) 한 사람들을 하자 있는 사람 취급하는 분위기가 만연한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더더욱.



물론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결혼을 결심한 건 아니었다. 결혼은 '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었지만 '해보고 싶다'는 호기심과 기대감도 불러일으키는 콘텐츠였다. 그동안 혼자 살며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감정을 헤아려 보았다. 단연 외로움이었다.



내가 사랑했던 주말의 고요함과 한적함은 적막감과 한 끗 차이였다. 혼자 하는 게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행위들. 이를 테면 혼자 카페를 가거나, 영화를 보거나, 공원을 산책하는 것을 한평생 혼자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외롭고 처량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사람은 짝이 있어야 한다. 결혼이라는 제도의 불합리함을 열거하자면 셀 수도 없지만 그 제도를 벗어나 살 자신도 없었다. 나는 결혼 상대를 찾아야만 했다!



30대에 소개를 통해 만난 남자들은 하나같이 결혼이 급했다. 금사빠에 성질 급한 거로는 어디 가서 지지 않는데, 그들은 셰프의 정성이 담긴 음식을 감상할 새도 없이 허겁지겁 배만 채우려는 굶주린 자들 같았다. 결혼이 급한 이성은 참 매력이 없다. 첫 만남에서 결혼 얘기를 꺼내는 남자들을 보면 빵꾸난 대학 축제 게스트로 섭외당하는 '아무나'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도 진득하게 만나보면 좀 다르겠지, 라는 생각은 애초에 접었어야 했다. 결혼이 급한 그들과의 교제는 한 달을 채 넘기기 힘들었다.




남편과 소개팅으로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서른세 살이었다. 결혼할 남자!라는 예감이 번개처럼 내리 꽂지는 않았지만 첫인상이 좋았고 대화가 술술 잘 풀려 호감이었다. 맘에 드는 이성을 만났는데 그 이성이 나에겐 별로 관심이 없을 때 느껴지는 불안감이나 안달 나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냥 이 사람과는 자연스럽게 흘러가겠구나 싶었다. 세 번째 만난 날, 남편은 담백하게 고백했고 우리는 사귀기로 했다.




여기까지는 참 성숙하고 편안한 30대의 썸 진행 과정이었다. 문제는 본격 연애에 돌입해서였다. 남편은 내가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일단 나를 별로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얼굴 한 번 더 보려고 집 앞까지 온다거나, 회사 앞에서 픽업하는 정성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냥 평일에 데이트 한 번 했으면 좋겠는데(심지어 회사도 가까웠다) 남편은 평일 데이트는커녕 연락도 잘 안 했다.



이게 뭐지? 나는 너무 당혹스러웠다. 30대라서 그런가? 35살의 남자가 25살처럼 연애하긴 아무래도 쉽지 않겠지. 일 욕심도 많은 사람이고, 친구도 많고, 가족도 챙겨야 하고...아무리 그의 입장에서 그를 이해하려 해도 평일에 연락을 거의 하지 않고 데이트 약속을 잡았다가도 약속 시간 직전에 취소하는 그의 행동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아, 이번에도 꽝이로구나. 이 남자도 아니구나. 나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그냥 나이가 있다 보니 조건 맞춰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를 '섭외'한 것이로구나.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토네이도에 판잣집 날아가듯 나의 자존감은 와르르 무너지곤 했다.



"결혼을 하고 싶으면 그냥 다 참아야 해." 주변 지인 중 바른말 현명한 말 하기로는 1등인 선배가 이런 조언을 해줬다. 그건 (더럽고 치사하지만) 맞는 말이었다. 결혼의 키를 쥔 건 남자다. 똑똑한 여자라면, 여우 같은 여자라면, 서운한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무심한 남자를 요리조리 잘 요리해 자신이 원하는 바(결혼)를 쟁취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똑똑한 여우가 아니었다. 연애에 있어서만큼은 무식하리만큼 직선적이고 곰처럼 우직한 게 나였다. 나는 계산도 못하고 밀당도 못했다. 남편과의 연애에서 나는 철저히 을이었다.



하루는 먼 친척의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지방 장례식장에 가야 한다며 약속을 취소해야겠다는 카톡이 왔다. 결혼식은 몰라도 장례식은 꼭 참석하는 게 도의라고 생각하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았다. 그동안 약속을 한 두 번 취소한 것도 아니고. 결국 참다 참다 터져서 나의 불만을 일목요연하게 적었다. 문장부호와 띄어쓰기까지 꼼꼼하게 확인하고, 논리적 흐름이 이상하진 않은지 수 번의 퇴고를 거쳐 장문의 카톡을 완성했다. 고심 끝에 전송 버튼을 눌렀을 때, 정말 가고 싶은 회사에 최종 연봉 협상 메일을 보낸 기분이었다. 귀사의 일원이 되고 싶은데 제 몸값을 조금만, 조금만 더 쳐주시면 안 될까요? 저는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이잖아요?



말과 글로 상대의 멘탈을 후려치는 건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이제까지 만난 이성들에게 나는 그렇게 장문의 글로 나의 감정을 빈틈없이 쏟아내곤 했다. 그럼 그들의 반응은 모 아니면 도였다. 잘못했다고 빌거나, 잠수를 타거나.



남편의 반응은 기존 보기에 없었다. 그는 내가 전송 버튼을 누른 지 2분이 채 지나지 않아 나에게 답장을 보냈다. "우린 잘 안 맞는 거 같네요." 그 카톡을 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연봉 인상 요청에 응할 수 없으니 합격을 철회하겠다는 회사의 메일이었다. 안 돼!! 난 이 회사에 들어가야 한단 말이다!



"아뇨, 전 00 씨 많이 좋아해요. 서로 이해하고 맞춰봐요." 울면서 잘못했다고 빌고 싶은 심경이었지만 비굴함을 애써 감추며 이렇게 말했다. 이성 관계에선 더 간절한 사람이 덜 간절한 사람에게 무조건 미안하다고 해야 한다. 연애만큼 잔인한 권력 관계도 없다. 그는 영주고 나는 소작농이었다.



결혼 후에도 이 차가운 연애의 트라우마 때문에 나는 종종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왜 그렇게 '싸가지 없고', '무성의한' 자세로 연애를 했느냐고. 나를 일부러 골탕 먹여서 간절하게 만들려는 밀당의 수법이거나, 30대 남자라서 연애에 아무 기대나 설렘이 없어 그런 거라고 혼자 결론을 내리고 있었는데, 남편의 대답은 너무나 허망했다.



"그래? 난 그냥 예전부터 그랬는데..." 날 덜 좋아한 것도 아니고, 연애에 열정이 없는 것도 아니고, 결혼이 급해서 날 섭외하듯이 만나자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늘 그런 방식으로 연애를 했다는 거였다(세상에나...). 그와 나는 연애의 온도가 달랐다. 나는 주인을 볼 때마다 꼬리 치며 발발거리는 강아지의 연애를 하는 사람이었고,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소파에 누워 낮잠만 자도 사랑받는 고양이의 연애를 하는 사람이었다. 가끔 주인을 흘낏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집사에 대한 사랑을 다 표현했다고 생각하는 뚱뚱하고 게으른 고양이.



남편은 나의 감정이 너무 냄비 같아서 두렵다고 한다. 확 달아올랐다가 확 식는다고. 반면 자기는 뚝배기처럼 은은하고 오래가는 사랑을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남편에 대한 나의 감정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르락내리락하는데, 남편의 감정은 "쟨 또 왜 저러지" 정도에 일관되게 멈춰 있다. 남편과 불타는 연애는 못해봤지만, 불타는 결혼생활은 지금 체험 중이다. 매일 물고 뜯고 싸우다가도 서로 껴안고 위로하며 그렇게 하루가 저문다. 연애보다 조금은 뜨거운 온도로. 우리의 결혼 생활은 익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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