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탐구생활] 5회
대학원병
송재훈
kwonho37@daum.net | 2019-12-17 00:08:00
내가 입학했을 무렵 대학원을 떠난 한 선배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대학원에 계속 남아있는 사람들은 몸이 ‘병신’이거나 마음이 ‘병신’이거나 둘 중에 하나다.” 나는 이 말이 대학원에 들어와서 들었던 많은 말들 중 가장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원생들은 정말 다들 아프다. 충분한 운동량도, 쉴 시간도 없이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읽고 쓰거나 일을 하는 시간이 길다 보니 건강해질 틈이 없다. 또 매끼 건강한 식사를 제때 챙겨 먹기도 어렵고, 과자나 야식의 힘으로 밤을 새며 버티기도 하다 보니 건강은 날로날로 나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학원생에게 더 널리 퍼져 있는 병은 몸의 병보다는 마음의 병이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처방 받을 수 있는 간단한 약을 타기 위해 학교에 있는 의료기관을 찾았을 때였다. 정신건강의학과는 다른 진료과들과는 다르게 접수 및 대기실도 한적한 복도의 방 안에 위치해 있었다. 무엇 때문에 온 것인지 얘기하기도 전에 접수실로 들어온 나를 보고 담당자는 “대학원생이세요?”라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하자 바로 “우울증 때문에 오셨나요?”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나는 우울증 때문에 온 것이 아니고 상담을 신청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했다. 내가 약처방을 위해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자 그는 현재 진료예약이 밀려 있어 한 달이나 지나야 진료가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며칠 뒤 혹시 진료예약이 가능한 틈이 있을까 하고 정신건강의학과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그러다 주요 질환 별 정보가 나와있는 탭을 보게 되었는데 가장 첫번째로 위치한 우울증의 사례로 몇몇 대학원생의 이야기가 올라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나는 이곳의 주요 역할이 대학원생의 우울증 치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학원에서의 몇 학기가 지나고 갑자기 호흡곤란 증상이 찾아온 적이 있었다. 누군가 가슴을 누르고 있는 것처럼 답답하고 숨이 잘 들이마셔지지 않았다. 나는 이제야 드디어 금연을 해야만 하는 때가 온 것이라고 생각하며 검진을 위해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내 폐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으며 그런데도 이런 증상이 나타난 것은 신체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라고 했다. 이것이 일종의 미약한 공황장애에 가까우며 앞으로 해당 증상이 지속되거나 생활에 불편을 주게 된다면 정신과에 가보라고 조언했다. 담배보다도 대학원이 더 해로웠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증상을 겪은 것이 나뿐만이 아니었다. 최근 건강검진을 받은 대학원 친구도 같은 증상으로 검진을 받았으며 결과도 같았다고 했다. 친하게 지내던 선배는 우울증이 심해져 갑작스럽게 휴학을 했고, 이런 식으로 학교를 떠난 뒤 돌아오지 않는 선배도 있었다. 친절하고 밝았던 한 선배는 무력감이나 피로감으로 힘들어하곤 했는데 얼마 전에는 그가 사람이 가득한 식당에 앉아 홀로 울고 있는 걸 봤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식당에서, 연구실에서, 화장실에서 울었다고 했다. 이쯤 되면 대학원은 우울증으로 진단을 받은 자와 진단은 받지 않았지만 우울증을 앓는 자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위염도 디스크도 우울증도 공황장애도 원인은 같았다. 대학원이었다. 어딘가 아파서 병원에 가면 어떤 증상이 있는지와 더불어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데 영향을 줬을 법한 어떤 나쁜 행동을 했는지를 묻는다. 경험상 “제가 대학원생이라..”는 거의 모든 경우에 이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었다. “아, 제가 대학원생이라”까지만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의사들은 더 이상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경우 대학원생들이 그런 몸과 마음의 병에 걸린 이유는 그들이 대학원생이기 때문이다. 적절한 보상도 받지 못하며 착취당하고, 미래를 저당잡힌 채로 눈치보고 스트레스 받으며 밤새워 힘들게 일하고 공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대학원에서 누군가 아플 때마다 그것을 “대학원병”이라고 부른다. 건강하지 못한 대학원 환경에 노출되어 앓게 되는 몸과 마음의 병을 “대학원병”이라고 부른다.
[뮤즈: 송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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