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n잔의 취함] 4회

달콤함의 이면에 감춰진 것

유승빈

kwonho37@daum.net | 2019-12-24 23:26:00



칵테일 중에는 레이디 킬러 칵테일로 분류되는 것들이 있다. 우리 말로 하면 작업주 정도가 되려나. 대표적인 레이디 킬러 칵테일을 꼽자면 오렌지와 보드카를 섞은 스크류드라이버나 온갖 술들을 다 섞은 후 콜라를 넣어 마무리하는 롱 아일랜드 아이스 티와 같은 칵테일들이 있다. 이처럼 레이디 킬러 칵테일은 일반적으로 새콤달콤한 과일 맛이나 달달한 초콜릿의 맛 등으로 높은 도수를 숨겨버린 칵테일을 의미하는데, 그 속에 담겨있는 의도가 굉장히 불순하다. 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여성에게 도수가 잘 느껴지지 않는 달콤한 칵테일을 권해 취하게 만들겠다는, 참으로 불쾌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먼저, 레이디 킬러라는 표현은 음주문화가 남성중심적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 표현의 기저에는 남성은 술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여성은 남성보다 술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이 깔려있다. 그렇기 대문에 남성이 추천해주는 술이 도수가 높은지 낮은지도 모르고 무작정 마시게 된다는 것이다. 좀 더 예민하게 바라보면, 여성이 주체적으로 메뉴를 선택하기보단 남성의 선택에 의존하는 수동적인 존재라는 뉘앙스를 풍기기도 한다.



두 번째 문제는 여성이 술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주스 같은 술이나, 쓰지 않고 달콤한 술을 좋아한다는 편견이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술은 여성들의 것이고, 독하고 거친 술은 남성들의 것이라는 인식이 아직도 만연한 듯 하다. 물론 여성과 남성이 선호하는 술에 그런 경향성이 있을 수는 있지만, 이러한 경향성을 공고히하고 재생산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남성도 주스 같은 술을 좋아할 수 있고, 여성도 도수 높은 버번 위스키를 홀짝일 수도 있지 않은가. 새콤달콤 맛있는 술을 추천하면서 굳이 ‘여성분들이 좋아하시는 맛’이라는 표현을 쓸 필요는 없다. 그냥 주스 같은 느낌의 새콤달콤한 술이라고 하면 될 뿐.



물론 그 무엇보다 화가 나는 점은 상대방이 미처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취하게 만들겠다는 의도이다. 도수가 높다는 것이 확 느껴지는 술을 주면 상대방이 마시지 않거나 절제하면서 마실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달콤함으로 도수를 숨긴 술을 주는 것이다. 이렇게 애써 상대를 취하게 만들려는 목적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그리고 보통 이런 의도를 가진 사람들은 서로 기분 좋게 취할 정도로 마시는걸 원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자신보다 훨씬 더 취하기를 원하고, 인사불성이 될수록 만족할 것이다.



이런 여러 문제들 때문에 레이디 킬러 칵테일이라는 표현을 굉장히 싫어한다. 성별에 관계없이 많이 마시다보면 훅 가는 칵테일이니 그냥 킬러 칵테일이라고 부르는게 좋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굳이 이런 분류가 필요한지에 대한 회의감도 든다. 기분좋게 쭉쭉 마시며 취하고 싶을 뿐일수도 있으니까. 물론 그러기에 제격인 술이기도 하다. 혹시라도 타인에게 권하고 싶다면 은근히 도수가 높아 자기도 모르게 취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는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뮤즈: 유승빈]


[ⓒ 사회가치 공유 언론-소셜밸류.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