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탐구생활] 4회
대학원의 거지들
송재훈
kwonho37@daum.net | 2019-12-16 23:51:00
대학원생들은 돈이 없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공짜 밥이라면 밥풀 묻은 주걱으로 뺨이라도 맞으려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나도 한때는 점심이 제공되는 강연들을 찾아다닌 적도 있었지만 이내 샌드위치 하나보단 내 시간과 에너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고 이 고상한 걸식을 그만두었다. 그렇지만 밥 한끼에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들도 던져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은 나에게 충격과 공포였을 뿐 아니라 이곳이 학술활동을 위한 곳인지 수용소인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첫 학기에 조교를 맡았을 때, 나를 부리던 교수는 정말 모든 것을 나에게 맡겼다. 수업과 관련된 것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고 ‘이건 정말 교수가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일도 나에게 맡겼다. 그 중 최고는 그가 무려 교수들이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하는 “대학원생 인권침해 예방 교육”을 나에게 시켰다는 것이다. 나는 그를 대신해서 2시간 넘게 “대학원생 인권침해 예방 교육”을 듣고, 간단한 시험을 치고, 이수증을 출력하여 그의 손에 넘겨주었다. 그는 “대학원생 인권침해 예방 교육”으로도 대학원생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능력자였다. 이후로도 오직 그의 안녕과 평안을 위한 나의 업무는 계속되었고 나는 이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시스템에 대해 한 선배에게 한탄했다.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과연 그가 신분제가 폐지되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나는 밥 한 번 사주시면 다 풀릴 거 같은데.” 정말 어이란 게 사라져버린 나는 이게 밥 한끼로 해결될 일인지, 그리고 대학원생의 입장에서 교수와 밥을 먹는 것은 보상이 아니라 또 다른 노동이 아닌지를 되물었고 그는 이렇게 답했다. “아니 진짜 비싸고 진짜 맛있는 거면.” 그 순간 나의 눈에는 그의 모습이 죽도록 부려지고도 “히히 마님이 저에게 쌀밥을 주셨어요!”라며 기뻐하는 머슴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지난 여름에는 한 학술행사 기획에 동원되었는데 당시 회의에서 가장 중요하게 논의되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식사 메뉴였다. 다소 넉넉했던 지원금으로 연어를 먹는 것이 이 행사의 목적인 것 같았다. 그래도 이정도는 귀엽게 봐줄 수 있었다. 겨울에 열린 워크샵을 기획하면서는 정말 이들에게 워크샵의 목적은 지원금으로 “진짜 비싸고 진짜 맛있는” 것을 먹는 것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학술부장은 워크샵에 배정된 예산 중 절반 이상을 뒤풀이비와 다과비로 편성한 계획안을 보여주었다. 발표자와 토론자를 섭외하고 자료집을 만드는 데 편성된 돈은 예산의 약 30%에 불과했다. 이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그는 심지어 학과에 예산을 더 늘려줄 것을 요청하겠다고 했다. 뒤풀이비에 쓰이는 비용을 조금만 줄이면 부족함이 전혀 없는 금액이었는데도 그는 학과로부터 굳이 얼마의 예산을 더 받아 냈다. 그는 예산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빠듯하게 책정된 자료집 제작 비용을 늘려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무엇을 먹을지, 몇 명이, 몇 차까지 먹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만 신나게 떠들어대는 그에게 자료집을 위한 비용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자 “오~ 역시 재훈씨는 훌륭한 학생이네요”라는 칭찬을 가장한 빈정거림 같은 답이 돌아왔다. 나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결국 지원금으로 2차까지 “진짜 비싸”지는 않지만 “진짜 맛있는” 것을 먹었다고 한다.
언젠가 똑같이 돈이 없는 친구에게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고 물었는데 친구의 대답은 “돈이 없으면 가오도 없어.”였다. 그래, 돈이 없으면 가오도 없고 까짓 자존심 잠깐 구겨 넣어둘 수도 있다. 그래도 뭣이 중헌지 따져볼 생각은 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공짜밥을 탐하면서 바보가 되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밥 한끼에 팔려갈지도 모르는 나의 미래가 점점 걱정된다. 나는 공짜 밥 한끼에 행복을 느끼며 주인님이 양말을 던져 주시기만을 기다리는 도비가 되고 싶진 않다.
[뮤즈: 송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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