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대신 멍상] 1회
지루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김지언
kwonho37@daum.net | 2019-12-10 23:56:00
멍상을 하다보면 ‘지루하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아, 지루하다!'
지루하다는 말은 평소에 인간들에게 참 듣기 어렵고, 또 어떤 의미로는 참 듣기 쉽다. 무슨 말이냐면 한 순간도 지루할 틈이 없기 때문에 쉽게 지루함을 느낀다는 거다. 일어나자마자 카톡이, 뉴스가, 음악이, 영상이, 이메일이 쏟아지고 해야 할 (어쩌면 꼭 해야 하는 건 아닌) 일이 치고 들어온다. 뭘 놓치고 있다고 마케터들은 떠들고 난 따라가기 바쁘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조금만 평소보다 속도가 느린 경험을 하면 지루하다고 쉽게 판단하게 된다.
지루함을 피하도록 짜여져 있는 기기라고 인지한 후 핸드폰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매끄러운 설계에 입이 떡 벌어진다. 시선을 사로잡으려 애쓰는 기기들, 앱, 서비스가 좀더 산만해지길 요구한다. 유튜브에서 추천 뜨는 걸 보면 종종 기분이 나쁘기까지 하다. '맛있는 사료 찾는 거 어떻게 알고 이런 영상 추천하지!' 싶어서다.
자극에 익숙해지다보면 점점 둔하고 거친 감각만을 느낄 수 있게 있게 된다. 미세하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맨날 길거리의 MSG 이만-큼, 설탕 이만-큼, 소금 이만-큼, 청양 고추 이만-큼 넣은 떡볶이를 먹다보면 집에서 해먹는 밥의 정교하고 섬세한 맛은 잘 느껴지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지루함은 대체 뭘까? 자극이 없는 것? 사실 자극은 어디에나 있다. 지루함은 나의 둔해진 감각 때문에 생기는 주의의 결핍에 가까울 것이다. 내가 지금 하는 경험이 무엇이든 섬세하게 주의를 기울이면 지루함이 사라진다. 이건 멍상을 통해 처음으로 직접 경험한 사실이다. 신기한 일이다.
멍상은 쉽게 말해 있는 그대로의 맛을 잘 느낄 수 있도록 MSG, 설탕과 소금 같은 강한 자극을 덜어내고 순수한 혀로 돌아오는 과정이다. 핵심은 있는 그대로를 느낄 줄 알게 되는 것이다. 감각을 예리하게 만들면, 순간순간 내 내면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일들을 알아차리게 된다. 강렬한 중독을 선사하는 유쾌한 감각과 감각이 야기한 감정에 끌려다닐 때 자기파괴적인 선택을 내리기 쉬운데, 멍상을 통해 내면을 순간순간 명료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합리적인 선택을 내릴 확률이 높아진다.
물론 멍상은 종종 지루하다. 그래도 이제는 멍상을 하며 ‘지루해!!’라는 생각이 넘실넘실 올라올 때 지루할 수 있는 이 순간에 조금 고마워진다. 꾸준히 멈춰설 용기를 낸다면 집밥의 건강하고 미묘한 맛을 느끼듯 다양한 감각에 눈을 뜬 채로 살아갈 수 있을테니까. 마음 근육을 키우는 이 훈련이 종종 지루하다고 판단하게 되더라도, 다정하게 바라봐주며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기로 한다. 이 산만함 왕국에서 정확히 반대로 가고 있는 순간에 경의를.
ㅡ
왈
[뮤즈: 김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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