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 편집자] 3회 저자와 편집자, 애증과 설움의 관계
박세미
kwonho37@daum.net | 2019-11-14 18:02:00
책의 저자는 대개 자기 책을 담당하는 편집자와 소통합니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림이 주를 이루는 책을 만들 때, 화가의 그림 작업 일정이나 의견 조율에서 마감까지 디자이너에게 맡기는 경우도 있다고 하고, 아주 특이하게 저자가 출판사 대표와 주로 모든 것들을 정하고는 해당 책을 맡은 편집자는 오로지 ‘원고’와 외로운 싸움을 해 나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앞선 상황들은 제가 겪어 보지 못한 일이기에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있는 게 없을 뿐입니다.
어쨌든 편집자는 책 한 권을 만드는 동안 그 책을 쓰거나 그린 저자와 꼭 만나야 합니다. 그 저자가 어떤 사람이든 짧게는 두 달에서 길게는 몇 년, 아니 (운이 나쁘면) 십 년이 넘을 때까지 지지고 볶으며 지내야 합니다.
책이 천차만별이듯, 그 책을 지은 저자들도 어쩌면 그렇게 하나같이 개성이 강한지 모릅니다. 말이 좋아 강한 개성이지, 저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예민’과 ‘특이점’을 고루 장착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이들이 가진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작업에 있어 오직 ‘자기’만을 바라보고 ‘자기’만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뻔한 걸 들이밀지 않기 위해 내면의 가장 깊은 데를 끊임없이 파고들고, 날카롭게 자기를 찔러대야 하는 창작자로서는 어쩌면 필수불가결한 것일지도 모른다며 그들을 이해하려고 애써 봅니다.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일지 생각하며 그들에게 경외 어린 마음을 가져 보기도 하지요. 그러면서 그들이 나에게 넘겨 준 소중한 작업물에 애정을 가지(려고 애쓰)게 됩니다.
여기서 편집자와 저자와의 관계는 때로 편집자 관점에서 서러운 포지션으로 설정되기도 합니다. 편집자는 저자 개인의 성품과 빽빽한 일정, 사적으로 일어난 사건들, 그로 인해 늘어지는(또는 기획 방향에서 틀어지는) 작업에 대해 끊임없이 고려하고 배려하고 재고합니다. 하지만 저자들은 편집자를 ‘편집자 개인’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편집자는 곧 출판사이지요. 이건 편집자가 출판사 직원이든, 편집일을 의뢰받은 프리랜서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편집자의 편집 작업에 대해 고려하고 배려하고 이해할 이유는 크게 없는 것이지요.
편집자는 사실 책에서 드러나는 경우가 없습니다. 책 뒤편에 있는 판권의 이름 한 줄이 미약한 존재감을 드러낼 뿐이지요. 하지만 여러 편집자들이 책에 자기가 드러나지 않는 것에 대해 아직까지는 커다란 문제의식을 느끼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많은 동료 편집자들과 이런 이야기를 대놓고 해 본 적은 잘 없지만, 아마 저자와 독자를 이어 주는 견고한 다리 역할을 한다는 것에, 자기가 먼저 알아본 이 좋은 원고를 책으로 충실하게 담아내는 것에 자부심이 있기 때문 아닐까요.[‘자부심’이라는 단어는 정말 꺼내고 싶지 않았지만, 이 말 말고는 (하필이면) 이 직업을 계속 이어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설명하기 힘들 것 같았습니다.]
편집자는 책을 만들기 위해 저자와 소통하지만, 오로지 책에 대한 것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원고 작업을 진행시키기 위해 저자를 독려하기도 하고,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책에 대한 여러 의견들(주로 결과물을 산으로 가게 만드는 것들이지요)을 저자한테까지 들어가지 않도록 막아 주고 싸워 주기도 합니다. 반대로 저자들이 당연한 듯 하는 다소 무리한 요구를 (끓어오르는 분노와 허탈함을 참고) 웃으며 받아주기도 하지요. 그 요구는 대체로 출판사에게까지 관철시켜야 하는 종류의 것이기 때문에, 저자의 입장을 대변하며 출판사와 팽팽하게 맞서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 모든 수고들은 편집자이기에 당연히 해야 하는 것들이 아닙니다. 하지만 편집자는 책을 만들기 위한 과정으로서 이 모든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해쳐 나갑니다. 저자가 원고를 완성해 나가는 일에 집중하듯, 편집자도 마찬가지로 책을 만들어 나가는 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갑, 편집자는 을이 아니라 저자와 편집자는 수평선에 함께 서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서로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있다면 어느 쪽에서든 ‘아, 나도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라는 혼잣말을 내뱉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양쪽 다 소중한 ‘나의 책’이라고 여기게 되지 않을까요.
[ⓒ 사회가치 공유 언론-소셜밸류.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