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동안의 필리핀] 3회
나의 영어 이름은
김주연
kwonho37@daum.net | 2020-07-14 17:41:00
나에겐 “Jay”라는 이름이 있다.
영어권 나라에 여행 또는 영어 연수를 가거나 한국에서 영어 학원(특별히 회화 학원이라면)에서 우리는 영어 이름을 짓게 된다. 중학교 1학년으로 올라가던 해 겨울, 난 필리핀에 3주 정도 영어 연수를 갔고 처음으로 영어 이름을 고민했다. 그때는 Jake와 비슷한 발음의 이름으로 지었던 것 같다. 나중에 들어간 필리핀 고등학교에선 나의 한국 이름 발음하기가 어렵다면서 영어 이름을 권했고 난 자신 있게 “Jake”라고 말했다. 담임 선생님은 몇 번 “Jake”로 부르다가 한 주 정도 지나서는 “Jay”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어느새 내 이름은 제이, Jay로 고정되게 되었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쉽게 이름을 바꾸어서 부르지? 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필리핀에서 이름은 그렇게까지 큰 의미가 없었다. 한국에서야 무속신앙을 따르든 따르지 않던 이름과 한자 뜻에 무게가 큰 편인데, 필리핀은 역시나 자유롭다. 실례로 친한 친구 이름은 “April”이었는데 그 이유는 4월에 태어나서였다. 우리로 치면 4월에 태어나서 이름이 “4월”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쉽게 지어진 이름이었지만, 이 이름에 많은 기억과 추억들이 쌓이게 되었다.
한 가지 흔한 오해가 있다.
그것은 바로 영어권 나라에는 존댓말이 없기에 쉽게 서로를 불러도 된다는 것이다.
이 생각만 가지고 그대로 행동하면 자칫 무례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물론 영어권 나라는 서로 이름을 부르기도 하고 나이를 떠나 친구가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이와 신분에 따라서 존중의 의미를 넣은 칭호들이 있다. 그 표현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Ma’am, Sir, Mr, Ms 등의 호칭들이다. 이 표현들은 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또는 상대방의 권유로 빼기도 하지만, 처음에는 칭호를 지켜주면서 존중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필리핀은 중국(화교)의 영향으로 생각보다 공손한 영어 표현(would, may)을 사용하지 않으면 무척이나 무례한 것으로 여긴다. 영어권 나라들이 생각보다 자유로운 부분이 크지만, 또한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영어 호칭에 있다는 것은 꽤나 중요한 이야기 같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생각보다 영어권이라고 해서 단일한 문화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영어권이라고 할 때 미국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영국, 호주 그리고 필리핀이나 인도까지 포함될 수 있기에 좀 넓게 생각하면서 그 나라 사람들과 친해질 준비를 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필리핀에선 조금만 친해지면 서로 호칭을 빼고 친밀하게 부른다.
나이 차이가 나더라도 쉽게 서로 이름만 부르고 그 안에서 쉽게 친구가 된다. 요즘 주변에서 이민, 여행을 가고 싶어 한다. 그 이유 중에 하나라면 한국에서 쭉 살아오면서 쌓인 습관과 관성 안에서 지쳤기에 뭔가 새롭게 관계를 리셋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나는 유학을 통해서 한국에서 16년을 살면서 쌓인 피로, 무기력을 필리핀에서 새롭게 재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새로움도 조금 지나면 낡게 되었지만 그래도 두 번째 기회로 새로운 이름도 가지고 새로운 관계도 만들 수 있었기에 지금 후회가 안된다. 새로움을 추구하기에는 어느새 한국에 다시 돌아온 지 오래되었지만, 지금도 일부러 친해지는 사람에게는 영어 이름을 알려준다, 마치 애칭처럼. 그럴 때 뭔가 새롭게 서로를 더 알아갈 수 있다고 믿게 되는 마음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 영어 이름은 “Jay”라고 소개하고 싶어진다.
[ⓒ 사회가치 공유 언론-소셜밸류.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