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을의 사랑] 2회 짝사랑을 도모하는 방식에 대해서
글: 뮤즈 최예을 작가, 그림: 빈센트 반 고흐
최예을
kwonho37@daum.net | 2019-11-21 00:58:00
어느 날. 내 지루한 연애사의 가장 최근을 함께한 그 애가 밥을 먹다 불쑥 말했다.
"넌 짝사랑을 해본 적이 없지. 그리고 그게 네 문제점이야……. 알고 있어?"
난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그러게, 난 아무리 생각해도 그래본 적은 없네. 싱겁게 수긍하고는 아무 동요 없이 젓가락질만 계속했다. 그 애가 어떤 얼굴로 날 쳐다보고 있는지 끝까지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면서. 그때의 난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애를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었으니까.
이별하던 날도 그 애는 늘 그랬듯 침착한 모습으로 나를 데려다주었다. 나는 덤덤한 척 돌아섰지만 덤덤함을 넘어 무감각한 나의 본심을 느꼈다.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와 비로소 혼자가 되었을 때. 내 뜻대로 그 애를 이별까지 끌고 왔단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우리'를 영영 잃었단 상실감보다, 무책임한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에 집중하는 나를 봤다. 나의 지난한 세 계절을 동행해주며 귀한 마음을 기꺼이 내어주려던 사람을 내내 '견디던' 나. 나는 누군가의 진심을 못 이기는 척 받지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흔한 눈물 한 방울이 없는 마지막이었다. 자격이 없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 종종 그 말의 의미를 떠올린다. 그 애가 어떤 마음으로 날 바라보고 나와 다른 의미로 견디고, 어떤 초라한 얼굴로 내게 그 말을 꺼냈을지를.
그런 나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그 감정은 지금 내 쪽에서 일방적이다.
얼마 전엔 그 사람과 단둘이 처음 밥을 먹었다. 이 자리는 오롯이 내가 애써서 마련한 셈이었다. 나는 사소한 소망도 참고 또 참는 데 익숙하고, 그걸 단념할 이유를 찾는 데도 선수였는데. 난 단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고 그와의 대화를 원했다! 그래서 평소와는 달리 무리해서 그 마음의 편을 들어주고야 말았다.
그와 저녁을 먹기로 한 날. 오후 3시부터 손발 끝마다 쥐가 나는 것 같았다. 그 앞에 서기 전, 마지막으로 본 거울 속 나는 어쩜 그리 예쁘지가 않던지! 모든 걸 없던 일로 하고 냅따 도망을 치고 싶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그가 나만큼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옆에 서 있었다.
그와 나는 서로의 취향과 의견을 드러내지 못하고 식당 선정부터 고생을 했다. "아무 데나, 아무거나요!" 모든 대답을 나도 모르게 작위적인 씩씩함으로 뱉어내고 있었다. 우리는 결국 (내가 엄청나게 싫어하는) 중국집에 들어갔다. 무난하게 볶음밥을 시켰다. 짜장은 입가에 덕지덕지 묻을 수 있고, 짬뽕 국물은 옷에 튀기 십상이며, 다른 메뉴는 애매했기 때문이다. 주문한 다음엔? 기억나지 않고,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 그 작은 테이블 위에서 나의 못된 푼수끼를 폭발적으로 발휘했으니까. 내 동생이 경고하기를, 절대로 이 남자 앞에선 수다맨처럼 굴지 말라 했는데……. 아아. 나는 어색함을 정말로 참지 못하는 인간이었다. 난 오직 '이 분위기를 어색하지 않게 만들어야 햇!' 이란 목표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처럼 내내 떠들었다.
그는 내 얘길 열심히 들으면서도 중국식 냉면을 태연하게 후루룩댔다. 나도 예의상 볶음밥 한 숟갈을 떠서 입에 억지로 밀어 넣어 보았다. 하지만 균일하게 기름칠 된 밥들이 생쌀이 되어 올올이 흩어졌다. 목구멍은 빨대처럼 좁아져 뭐든 절대로 넘어가 지지가 않았다. 나는 생애 최초로 내가 시킨 음식을 '그대로 다 남기는' 경험을 했다. 그런 식상한 내숭은 아니었는데.
다행히 수다맨으로 활약한 보람도 느꼈다. 놀랍게도 생의 자취에서, 또 여러 취향적인 면에서 우리에게 공통점이 과다함을 확인했으니까. 그중에서도 그와 내가 빙수 마니아란 걸 서로 인지했기 때문에, 우린 그 건물 꼭대기에 있는 빙수집으로 자연스레 2차를 갈 수 있었다. 그 간장 종지만 한 빙수 하나를 나눠 먹는 데도 얼마나 얼떨떨하던지! 처음 알았다. 사람이 얼떨떨함에도 취할 수 있다는 것을.
돌아오는 길엔 버스를 반대로 타고 말았다. 방금까지 같이 있던 그가 이제 내 옆에 없다는 게 안도가 되기도 하고, 눈물이 찔끔 날 만큼 아쉽기도 했다. 흐릿했던 그가 내 안에서 선명해지는 것도 느꼈다. 한 번의 만남으로 한 사람을 결코 헤아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는 알았다. 그와 내가 얼마나 많이 닮았는지를. 물론, 이건…….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잘 통한다'가 아닌 '우린 너무도 닮았다'라는 게 어떤 의미일까. 내 마음에 잔잔한 파장을 그리며 느껴지는 아릿함이 무엇인지 그땐 전혀 알 수 없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버스를 바로잡아 탔다. 버스는 그와 조금 전까지 함께한 신도림역 앞을 다시 지나갔다. ‘너는 짝사랑을 해본 적이 없지. 그리고 그게 네 문제점이야.’ 6년 전 그 애가 남긴 서늘한 말이 귓가를 스쳐갔다.
상대방의 응답을 담보하지 않고 그를 막연히 기다리고 기대하면서 마음을 둔다는 것. 그 마음은 눈치 없이 자꾸만 피어나는데 그 앞에 선 나는 한없이 무력해진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일방적인 마음이 치러야 할 혹독한 대가였다. 서른을 코앞에 둔 나는, '그'라는 좌표를 선명히 찍고선 앞으로 나아가지도, 멈추지도 못할 짝사랑을 도모할 수밖에 없단 걸 알게 됐다. 그리고 그 방식이 무엇이든, 나를 아프게 할 것을 막지 못할 것도.
잘 들어갔냐는 메시지 하나를 차마 보내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한 그날 밤은. 고흐가 그려놓은 밤처럼 온통 내 마음속에 물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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