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에 독립] 1회
내가 독립을 원한 이유
이슬영
kwonho37@daum.net | 2019-11-10 01:45:18
나는 서른 살에 집을 나왔다. 10대 시절부터 집을 떠나 독립된 공간에서 혼자 사는 것은 나의 오랜 로망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면 엄마가 청소 빨래 다해주고 밥도 차려주는데 왜 혼자 살고 싶었느냐고? 주위에서 이렇게 물어보면 "자유롭게 사는 게 좋으니까."라고 대답했지만 사실 독립을 그토록 원했던 이유는 어릴 때부터 봐온 할리우드 영화 때문이었다.
헐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미국 젊은이들은 어느 누구도 부모와 함게 살지 않았다. 바퀴벌레가 나오는 트레일러에 살든, 맨해튼의 호화 아파트에 살든, 미국 성인들은 부모와 함께 사는 법이 없었다. 그들이 자유롭게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섹스를 하는 공간은 그들이 '혼자' 사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밥 먹으라고 소리 지르는 엄마도 없고 밤 11시만 되면 어디냐고 카톡 보내는 아빠도 없었다. 나는 부모와 함께 살지 않는 미국 사람들이 너무 쿨하고 멋져 보였다. 나도 그들처럼 나만의 공간에서 혼자 살고 싶었다.
대학 시절 지방에서 상경한 친구들은 이미 스무살 때부터 내가 부러워하는 미국 성인의 삶을 살고 있었다. 좁아터진 원룸일지라도 그 안에서 요리도 하고 티비도 하고 남자 친구와 꽁냥꽁냥 데이트도 하며 그렇게 살고 있었다. 성인의 연애에는 '방'이 필수인데, 모텔 가는 게 즐거운 건 20대 초반까지였다. 나이가 들수록 남의 공간을 대여할 때 느껴지는 불안함과 찝찝함이 싫었다. 표백제 먹인 시트만 바꿔가며 여러 명이 거쳐갔을 공간에서 애정 행위를 한다는 게 수치스럽고 한심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나만의 공간, 나만의 방!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나에겐 충분한 사색과 음주와 성인의 애정 행위가 허용되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했다. 중요한 건 독립의 시기였다. 20대의 독립은 언감생심이었다. 일단 돈이 없었고, 혼자 살 자신도 조금은 부족했다(=자기절제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서른이 임박하자, 이제는 정말 집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대의 독립은 불안 요소가 많았지만 30대의 독립은 그렇지 않았다.
돈도 웬만큼 모았고, 독립을 지원해줄 남자 친구도 있었고, 혼자 나가 살아도 무섭거나 몸과 정신이 피폐해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과년한 딸이 집을 나가면 결혼이라는 일생일대의 숙원사업과 영영 멀어진다고 굳게 믿는 부모님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보수적인 부모님을 설득하는 과정은 오래 사귄 연인과 헤어지는 것만큼이나 힘들었다.
[뮤즈: 이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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