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보험 일 하는데요?] 2회

나의 사랑스러운 아수라 백작들

달분자

kwonho37@daum.net | 2019-11-10 01:29:00

보험에 관한 글을 써보겠느냐고 제안할 당시 뮤즈 편집장님의 클로징 멘트를 소개한다.



“네가 나한테 카페라테 효과* 이야기했었잖아?”



카페라테 효과! 정확히 37개월 전이다. 형부에게 가입한 실비보험도 쓸모없다는 이유로 해약해버린 그녀 앞에 보험 설계사로 섰던 날을 기억한다. 그때 내뱉었던 말을 기억하고 있다니. 감개무량하다. 보험 설계사 입에서 나올법한 이야기를 설득의 기술로 쓰게 된, 소중한 제1호 고객님이다.



이렇게 학술적(?)인 고객도 있지만, 보험으로 한몫 단단히 챙기겠다고 말하는 재밌는 친구 L도 있다. 한때 단짝이었던 녀석과는 연락이 끊긴지 오래였는데, SNS를 통해 먼저 연락을 해왔다. 10여년만의 재회였다. 뭐하냐고 묻길래 직업을 밝혔을 뿐인데 당황한 눈치였다. 따로 보험 가입 제안을 한 것도 아닌데 운전자 보험이 필요하니 가입하겠다고 했다. 신속한 결단과 다르게 2년이 지나도록 L은 내 고객이 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알게 된 것인데, L은 직장에 자주 드나들던 설계사가 사준 술로 정신없을 때 보험 청약서에 서명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설계사는 동료의 노예처럼 구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런 이유로 보험 설계사를 신뢰하지 못했다. 그러던 녀석이 세달 전, 급성 맹장염으로 수술하고 내뱉었던 아주 깜찍한 말.



“실비보험이 이렇게 좋은 거였어?”



병원비가 대부분 통장에 입금되고, 수술?입원 진단금이 웬만한 인턴사원 월급만큼 추가 지급되자 놀란 것이다. 사실 L이 내게 가입한 실손보험, 질병보험 등 여러 개의 보험에서 중복 지급된 보험금이었다. 그동안 몇 번을 설명해도 흘려듣다가 뭉뚱그려 ‘실비보험’이라고 칭하니 헛웃음이 났다. 그녀의 말투를 빌리자면, 지지배… 내 말 제대로 안 듣고 있었어.



어쨌거나 보험을 바라보는 친구의 시선이 달라진 것은 확실해보였다. 앞으로 돈을 더 벌면 암보험을 크게 가입해야겠다는 포부(?)를 밝힐 정도였으니까. 아무래도 요즘엔 사람들이 암에 많이 걸리는 것 같고, 어차피 걸릴 거라면 보험금을 많이 받는 게 이득이라고. 보험이라면 손사래를 치던 녀석의 모습은 이제 온데간데없다.



5년째 연애 중인 남자친구는 병원 안 가는 게 자랑인 사람이었다. 한번은 핫팩을 배에 올리고 잠들어 저온 화상을 입었고, 벌겋게 변한 피부 조직에 물집이 생겼다. 옷이 상처를 스칠 때마다 신음소리를 내면서도 병원 가보란 말에 ‘병원 가봤자 소용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대로 두면 크게 흉질 것이 분명했으므로 손해를 싫어하는 특성을 이용했다.



“오빠 보험에 화상 진단비 30만원인가 있거든? 조건*에 맞으면 청구해줄게!”



예상대로 눈이 반짝였다. 무척 빠르게 채비를 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 이후로 생각보다 보험이 쓸모가 많다고 느꼈는지 요즘은 병원에 다녀와서 청구해달라며 영수증을 수시로 내민다. 심지어 독촉도 한다.



앞서 소개한 이 사람들… 보험 싫다더니 이제 보험 좋아하는 것 같다. 태세 전환이 아수라백작 뺨친다. 이 귀여운 변화가 나를 계속 일하게 만든다.





[뮤즈: 달분자]





*카페라테 효과: 식후 무심코 마시는 커피 한잔 값이 쌓이면 꽤 크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속담으로는 ‘티끌 모아 태산’. 아마도 적은 원고료를 빗대 한 말이겠지만, 내게는 보험에 관해 제대로 생각하고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말로 들렸다. 실제로도 그런 것 같다.


*대부분 보험 약관에는 ‘심재성 2도 화상’으로 진단을 받으면 증권에 정해진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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