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규칙과 인간관계를 배운다는 것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사실 복잡하고 귀찮은 일이다<br>그런데도 사회경험이 중요한 이유는 경험을 통한 배움이 무엇보다 값지기 때문이다

엄현이

kwonho37@daum.net | 2019-12-04 14:46:27

얼마 전 서점에서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을 접하게 됐다. 제목 그대로 9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들의 특징에 대한 내용이다. 그들이 이제 20대 중후반이 되어 본격적으로 사회의 일원이 되기 시작하면서 기존 사회를 이루던 주류 세대들에게 90년생과 적응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다. 이 책을 보고 '아 정말 세대가 변한 게 맞는구나….' 라며 속으로 웃음 지었다.


나도 7년 차 이후부터 들어오는 신입사원들이 90년대생이 되면서 나와 다름을 느꼈다. 자라온 환경이나 사회현상에 대해 공감하는 부분이 적어서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사고의 방향이 다르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했다. 사실 이해하기 어려움이 더 컸던 것 같다. 내 입장에서 느낀 건 나의 세대보다 좀 더 자기중심적이며,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데 거침이 없지만, 다양한 시각과 경험 그리고 자기만의 취향이 부재한 뭔가 공부 열심히 한 외국어 잘하는, 근데 친구가 없는 우등생을 만나는 느낌이었다. 확실히 대부분의 신입사원이 명문대 출신의 2개 국어 이상이 가능한 똑똑한 인재였지만 딱 자기 할 일만 하고 더 이상의 요구도 협업도 없는 '정이 없는 동료' 느낌이었다. 그런데 사실 그게 회사 내 규칙을 위반하거나, 인간적으로 잘못된 게 아니기 때문에 나쁘다는 표현은 할 수 없다. 정말 다르다는 게 맞았다. (90년대생에 대한 글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간략한 예시기 때문에 내용에 오해가 없길 바란다)


나 역시 20대 중반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휴학을 많이 했던 탓에 늦깎이 졸업생으로 노땅 취급을 당하던 내가 사회의 일원이 되고 보니 햇병아리 같은 어린아이 대우를 받는다는 게 기분 나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성인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유치원생이 된 것 같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뭐든 열심히 잘 배우겠다는 열정이 넘치던, 지금 돌아보니 기분 나쁘지 않은 시절이다. 하지만 지금 추억되는 그 시절이 마냥 즐겁고 행복했던 시절만은 아니었다. 온갖 수난과 시련이 넘치던 사회적응의 훈련기였던지라 눈물 흘리며 보내던 날들이 더 많았다.사회초년생은 크게 둘로 나뉜다. 그 시절을 버티는 자와 버티지 못하는 자다. 약 3년의 초년 시절을 잘 버티면 그 이후로 지속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면 대부분 사회생활을 포기하고 그 이외의 삶을 찾아 떠난다.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나는 그런 친구들을 보면 내심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생활이 쉽게 주어지는 기회도 아니거니와 사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보다 더 큰 배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 배움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경험하지 않고서는 그 어느 곳에서도 배울 수 없다.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사실 복잡하고 귀찮은 일이다. 나 혼자만 잘나서 되는 건 하나도 없다.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본인이 우두머리인 사업을 하거나 교직 생활을 하는 게 차라리 낫다. (사실 그마저도 사회생활이긴 하지만….) 예를 들어 카페의 직원으로 일한다고 가정해보자. 겉보기엔 오는 손님에게 커피만 팔면 그만인 직업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정시 출퇴근은 기본이고, 바쁘면 돈을 주지 않더라도 눈치껏 더 일해야 한다. 오는 손님 받는 것뿐 아니라 불평하는 손님도 응대해야 하고, 커피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미리 재료를 구비하고, 재고를 확인하고, 이 모든 것을 상사, 동료, 후임과 공감해야 한다. 일을 마치면 지저분한 화장실과 매장도 청소하고 또 새로운 하루가 되면 손님 맞을 준비로 바쁜 일상을 대비해야 한다. 일상인 것 같은 이러한 루틴 속에 사실 매일매일 다른 상황들이 추가된다. 10여명 내외의 인간관계가 엮이는 커피숍이 이렇다면 회사의 규모가 커질수록 그 상황은 더 복잡해질 것이다. 그렇다. 회사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또박또박 나오는 월급을 받아 안정적인 것 같지만 사실 복잡하게 엉켜있는 상황들을 헤쳐나가야 하는 고통이 수반되는 일이다.그런데도 내가 사회생활의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 경험을 통해 얻는 배움이 무엇보다 값지기 때문이다.


조직 안에서 관계를 형성하고, 그것을 유지해 나가는 방법을 체득하고, 조직 외 다양한 사람들과 부딪히며 소통하고, 서로 다른 계산법을 배우며, 그 안에 발생하는 실수들로 깨지고 혼나고 울고 스트레스받지만 또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는 결국 성장해 간다. 그 고통에 어느 순간 무뎌지거나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 10년 차 이전까지의 사회 경험은 특히나 정말 큰 배움의 시간이 된다. 10년 차 이후의 발전은 정말 그 사람 스스로 달려있다.


가끔 문득 내 결정에 의문이 들어 두려울 때가 있다. 그 두려움은 내 나이에서 온다. 30대 중반에 접어선 내가 20대 젊은 학생들과 다시 배움을 시작한다는 게 사실 걱정이 많다. 그럴 때마다 늘 되새기는 점은 바로 그들에게는 없는 나만의 인생 경험과 배움 있다는 점이다. 나는 경험하지 않고 얻어질 수 있는 배움은 없다고 확신하기에 나만의 강점이 새로운 도전에 반드시 도움이 될 거라 확신한다. 그런 자신감으로 나는 솟구치는 두려움을 헤쳐나가고 있다.누군가 80대 배우 윤여정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다시 20대로 또는 다른 나이로 돌아가고 싶으신가요?'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난 절대 다시 20대가 되고 싶지 않아. 지금이 행복해. 그시절의 치열함은 그때로 족해.' 라고 답했다.


나는 그녀의 답변에 공감했다. 10대든 20대든 나는 인생의 고민과 치열함으로 엮여있던 그 시절로 싶지 않다. 그 시절엔 그 시절 나름의 노하우로 살아갔으니 지금은 지금의 상황과 보다 성숙한 현재의 사고로 새롭게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늘 이렇게 과거를 그리거나 후회하지 않고 고마워하며 더 발전된 앞으로의 내가 되려 노력하는 삶을 살고 싶다.?


그래서, 사회 경험을 통한 배움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주어 늘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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