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셋, 네팔] 1회
프롤로그
KWON YOON JIN
kwonho37@daum.net | 2019-11-17 12: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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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은 내게 모든 것의 열쇠였다. 영화에서처럼 특별한 여행지에서 대단한 인연을 만나고, 히말라야에서 큰 깨달음을 얻는 그런 뻔한 이야기를 기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지부진했던 내 삶을 해결해 줄 거라 믿었다. 책이나 블로그에 앞 다투어 희귀한 여행지에 간 이야기가 영웅담처럼 올라오는 시대에 나도 함께 하고 싶었던 짧은 생각을 숨기지는 않겠다. 오히려 드러내고 싶다. 나는 어리숙했다.
다녀온 후 개인 블로그에 네팔여행기를 적기 시작했다. ‘내 의도는 순수했다. 고급정보를 낱낱이 정리해 올려 방문자 수도 늘리고 나중에는 책도 내고 유명해져, 결국에는 스폰 받는 여행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이런 알량한 거짓말은 하지 않겠다. 하지만 생각보다 글을 읽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치기어린 의욕도 식어갈 즈음 올린 글마다 댓글을 달아주는 한 사람이 나타났다. 한 사람. 글을 쓰기 위해 단 한 명이라도 읽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손가락에 힘을 실어주는 지 그 때 알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쓰기 시작했다. 잘 정리된 정보를 올리기에는 게으름이란 큰 복병이 있었고 사실 가서 겪은 일이라고는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으므로 글은 자연히 정보보다는 개인 사유(라고 쓰고 반성문 또는 자아탐구라고 읽는다)로 흘렀다. 27일의 여행을 하루씩 곱씹으며 두 번째 여행을 한 셈이다. 그 때의 몽매했던 자아와 다시 마주하는 건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럴만한 가치는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세 번째로 네팔에 다녀오려고 한다.
카트만두의 탁한 공기을 마시며 길바닥에 앉아 먹었던 샌드위치, 더운 물 샤워가 별 따기만큼 힘들었던 트레킹, 택시기사들과의 탑승비 흥정 전쟁, 계획대로 되지 않아 히말라야의 어느 롯지에서 펑펑 울었던 어느 저녁. 불쾌함으로 가득했던 일들은 어느새 너무나 그리운 일들로 바뀌어 버렸다. 마치 10분 전 일처럼 선명하게 나는 다시 히말라야의 가파른 절벽 길을 따라 걷고 있다. 발바닥에 전해지는 부서진 돌들의 표면, 아무리 걸어도 가까워 지지 않는 구름 위의 설산, 오고 가는 현지인들의 그리운 인사 ‘나마스떼’. 또렷이 보이고, 들린다. 삶과 죽음이 등을 부비고 있던 그 곳에서 천천히, 여전히 어리숙하게 다시 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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