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유기견에게도 해피엔딩을 주세요
언더독 x 베일리 어게인
Jess
kwonho37@daum.net | 2020-10-11 21:12:24
동물이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에 [마당을 나온 암탉] 감독의 후속작이라니 당연히 눈물 콧물 쏙 빼놓는 감동적인 내용 이리라 예상은 했다. 그래도 포스터가 이토록 발랄한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시작한 지 30초 만에 터져버린 눈물샘이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까지 마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포스터에 등장하는 각양각색의 이 귀여운 녀석들은 예상대로 떠돌이 개들이다. 너무 덩치가 커져서, 병이 들어서, 이사를 가야 해서, 아기가 태어나서- 가지각색의 이유로 버림받았을 녀석들은 삭막한 문 밖 세상에서 살아 남기 위해 무리를 지었다. 사랑을 듬뿍 받다 버려진 유기견들과 산에서 야생 그대로 살아가는 들개들을 화합시킨 건 주인공 뭉치이다. 어느 쪽이든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는, 인간의 방해가 없는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것은 마찬가지. 그렇게 언더독들은 유토피아를 향한 먼 여정을 떠나게 된다.
책을 원작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던 [베일리 어게인]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야기는 철저하게 강아지인 베일리의 1인칭 시점에서 쓰여졌다. 떠돌이 개였던 베일리는 주인을 만나 잠시 행복한 삶을 누리기도 하지만 결국 보호소에 잡혀 들어가 안락사당한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다시 또 다른 강아지로 환생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전생의 기억을 모두 간직한 채 총 네 번의 다른 삶을 살게 된다.
베일리는 두 번째 삶에서 만난 소년 에단이 지어준 이름이다. 소년과 마주한 첫 순간부터 베일리는 깊은 사랑에 빠진다. 베일리의 모든 삶의 목적과 의미는 에단이 되고, 그의 목숨을 구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결국 인간에 비해 너무나 짧은 개의 시간은 끝이 나고 둘은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다시 태어나 다른 주인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베일리는 모든 생의 순간 동안 에단을 잊지 못한다.
[언더독]의 개들도 마찬가지다. 결국에는 버림받았음을 알면서도, '기다려', 주인이 마지막 남기고 간 그 한마디를 잊지 못한다. 주인이 선물해 준 인형을 버리지 못한다. 인간이 싫다고 고개를 흔들면서도 다정히 내민 손길 하나에 무너져 배를 드러내 보이고 만다. 아무리 인간에게 배신당하고 상처 받아도 등을 돌리지 않는 동물, 몽둥이로 두들겨 패도 죽는 순간까지 꼬리를 흔들더라는- 준 게 없어도 돌려주기만 하는 바보같이 착하기만 한 동물. 개가 인간에게 가장 사랑받는 동물인 동시에 끊임없이 버림받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언더독]을 보는 내내 눈물이 났다. 영화는 유기견부터 개장수, 보호소, 개 공장, 로드킬 등 개와 관련된 거의 모든 사회적 문제를 현실감 있게 그려 내고 있다. 그럼에도 개성 가득한 캐릭터들이 유쾌하게 극을 이끌어 가기 때문에 시종일관 유머러스한 톤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랑스러운 개들이 결국에는 모두 버림받은 존재라는 것이, 인간에게 상처를 받고도 또 인간에게 다가간다는 것이- 단지 애니메이션 속의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의 수천수만 마리의 개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현실임에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눈물이 났다.
길고 긴 생을 거쳐, 베일리는 결국 에단을 다시 찾아낸다. 이제는 훌쩍 나이가 들어 버린 에단. 우울하고 외로워 보이는 에단. 네 번의 삶을 살아도 인간의 세계는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지만, 베일리는 단 한 가지만은 분명히 안다. 자신의 인생의 목표는 오직 주인, 에단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임을. 그렇게 베일리는 또 한 번 에단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 긴 세월을 거쳐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나서야 베일리는 행복하게 눈을 감는다.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이라지만, 사실 [언더독]을 봐야 할 사람은 어른들이다. 그것도 아주 나쁘고, 이기적이고, 심술궂어 사실 이 영화를 볼 일이 가장 없을 듯한 사람들 말이다. 이토록 생생하고 솔직하면서도 재미있고 이해하기 쉽게 유기견 문제를 담아낸 동시에, 해외 유명 제작사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높은 퀄리티의 한국 애니메이션이 나온 것은 크게 환영할만한 일이다. 한국 사회에서 오랜 시간 반려동물을 키워 온 한 명의 애견인으로서, 이 영화가 탄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모든 제작진과 관계자분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언더독]을 만들어 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이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널리 퍼져 나갈 수 있기를,
그리하여 단 한 마리의 개라도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있을까 싶다. 아이러니하게 가장 폭력적인 동시에 가장 평화로운 그곳에서, 개들이 지닌 순수한 열망과 인간의 문명적 이기가 예상치 못하게 어우러져 탄생한 거대한 시너지 효과는- 그야말로 폭발을 이룬다. 하늘을 날듯 높이 뛰어 오른 뭉치의 모습을 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오직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그들만의 해피 엔딩을, 오래오래 간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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