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탕아, 김이솝] 2. 모양 내는 까마귀
심규락
kwonho37@daum.net | 2020-10-04 16:34:36
[2-1] 까악 까악! 여러분, 이거 전부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사진출처: EBS)
어느 날 제우스 신이 가장 아름다운 새를 새들의 왕으로 삼겠다는 공고를 내건다. 이를 들은 새들은 예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모두 자신을 열심히 치장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까마귀 만은 풀이 죽은 채 한숨만 쉬는데……
“까악…… 다들 좋겠다. 나의 검은 깃털로는 절대 왕이 될 수 없을 거야……”
그렇게 한숨을 쉬던 까마귀는 불현듯 좋은 생각이 떠올라 분주히 숲 속을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이윽고 다음날이 되고 조류계 미스 유니버스 대회가 본격적으로 막을 연다.
“나 제우스, 이렇게 아름다운 깃털들로 이뤄진 새를 본 적이 없다! 너를 새들의 왕으로 삼겠노라!”
열심히 다른 새들의 깃털을 모아서 자신의 몸에 형형색색 꽃은 까마귀는 왕으로 뽑힌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까악! 까악! 까아아아아아아악!”
자신들의 깃털이 마치 본인의 것인 마냥 속인 까마귀에 대로한 새들은 모두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깃털을 뽑아내었다. 까마귀는 그 자리에서 다시 검디 검은 새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2-2] 토론토, 그곳의 다운타운
(사진 출처: urbantoronto.ca)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이곳은 캐나다의 대표 도시인 토론토. 그 안에서도 정말 유명한 곳인 CF Toronto Eaton Centre을 김이솝과 위키는 지나고 있었다. 다양한 인종만큼이나 많은 이들이 각자의 개성을 옷, 머리, 신발 등으로 제각기 뽐내고 있었다.
“와! 패션! 와! 다운타운!”
“촌티 좀 그만 내라, 쪽팔려 죽겠네 진짜. 서양 국가로 환생한 적 없었던 것처럼 저러 내.”
“토론토는 처음이잖아요! 게다가 다운타운답게 완전히 번화가에 있는 게 정말 좋아요! 참, 이솝 님은 평소에 추운 나라는 오시기 싫어하셨잖아요. 근데 왜 이번엔 여기로 오게 된 거예요?”
“뭐긴 뭐야, 이거 써재끼는 사람이 지금 캐나다에 있으니까 지 맘대로 설정한 거지. 심가놈 그거 진짜 몹쓸 새…
“말조심하세요! 그러다 그분이 더 이상 연재를 안 하시면 우린 얄짤 없이 다신 환생을 못한다고요!”
심가놈(?) 그리고 추위에 대한 분노로 인해 이미 어금니 2개가 빠득빠득 갈려나간 김이솝은 임플란트를 생각하며 주변에 치과가 있나 은근히 주의 깊게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토론토의 다운타운 부근에는 유명한 건물들이 많았다. 조명을 정말 잘 받는 토론토 시청, GBC라고 불리는 조지 브라운 대학, 남산 타워를 잊게 만드는 CN 타워 등 여러 랜드마크들이 있었다. 거리 위에 찍힌 발자국 수만큼이나 많은 이들이 단풍색 공기를 마시며 여유 있게 활보 중이었고, 홍콩과 뉴욕을 반반 섞은 듯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밤이었다. 그렇게 10분 정도 걸었을까, 술집 Warehouse을 지날 때, 래퍼 Lil Pump의 [Be Like Me]가 크게 들렸다. 다 같이 유쾌하게 노래를 따라 부르며 춤을 추는 손님들이 유리창 너머로 보였다.
“릴펌 우! 릴펌 야! 어ㄹ바리 워너 비 라잌 미!”
“네가 들고 다니는 그 수첩은 내 역사 기록용이지, 네 라임 노트가 아니다.”
“아 왜요! 이 노랠 더 들어보세요, 피처링한 Lil Wayne의 랩이 죽인다고요! But the kid is not my son, shout out Billie Jean!”
“오, 이집 가사 잘하네…라고 할 줄 알았냐? 그리고 쪽팔리게 왜 도보 위에서 춤을 추고 그러냐.”
“에이 이솝 님, 주위를 둘러보세요. 그리고 저 술집 안에서 춤추는 사람들도 보시고요. 남의 눈치를 왜 봐요, 다들 이렇게 즐겁게 노는데.”
맞는 말이었다. 토론토는 Toronto Sound라는 단어가 증명할 정도로, 음악 산업에 있어서 크게 부흥기를 겪었고 그만큼 시민들도 자신들의 흥을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길 가다 춤을 추는 것은 물론, 어디서나 버스킹 공연이 이뤄지고 있었다.
(사진 출처: pitchfork.com)
“그뿐 만이 아니에요, 모두의 패션이 각각 다 달라요. 이래서 제가 토론토에 와보고 싶었던 거라고요. 각자만의 개성을 보는 맛이 있잖아요.”
사실이었다. 다운타운에 즐비한 가게들 만큼이나 사람들의 개성도 각자 달랐다. 모자, 목걸이, 코트, 점퍼, 헤어스타일 모두 달랐다.
“코트, 구두, 댄디컷이 대부분인 한국과는 다르군… 그러고 보니 다들 유니크 하긴 하네…라고 할 줄 알았냐 심가놈아? 듣고 있, 아니 쓰고 있지? 알면서 그러지? 아직도 분이 안 풀리니까 네 머릿 가죽을 벗겨서 수제 명품백을 만들…”
“그만 좀 하세요! 이러다 진짜 리스폰 안 되는 서든어택 하게 된다고요!”
갈린 어금니의 수가 이제 3을 기록하게 되는 김이솝은 한국의 강남과 토론토의 다운타운이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 안의 사람들이었다. 캐나다의 사람들은 음악과 패션에 있어서 각자 개성 있는 모습을 보였다. 단정할 수는 없으나 그냥 그렇게 느껴졌다. 그 안에서 어떠한 유행이 연성되고, 전 세계로 또 한 번 뻗어나가리라.
미국도 마찬가지다. 문화예술에 있어서 미국을 필두로 한 서양 국가들은 대부분 리딩 포지션에 있어왔다. 음악, 영상뿐만 아니라 이제는 춤까지 전 세계가 그 문화를 받아들인다. 래퍼 Blocboy JB가 유행시킨 소위 ‘망치 춤’의 Shoot 댄스가 한때 바다 건너 일본 댄스가수들의 안무로 자주 쓰였다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보고 듣고 느끼는 방식’이 일체 되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몸의 동작까지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김이솝은 또 한 번 신기함과 이상함을 느꼈다.
[2-4] 내리실 역은 Sheppard-Yonge입니다.
(사진 출처: transit.toronto.on.ca)
다운타운 나들이의 소회를 풀기도 전에 김이솝과 위키는 지하철을 타고 토론토의 북쪽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Yellow Line이라고 불리는 노선을 타고 올라가다 보면, Sheppard-Yonge 역에 당도한다. 여기도 번화가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건물들과 사람들이 있다. 다운타운과 다른 점 한 가지가 있다면, Finch 부근이라 한인들이 매우 많다는 것이다. 한인들의 캐나다 이주 역사가 50년이 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마 여기서 시작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김이솝은 했다.
“야, 너도 '얼죽코 얼죽아'냐? 아 그거 있잖아, 얼어 죽어도 코트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건 남들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게 아니라 단순히 개인의 취향일 수도 있잖아요. 섣불리 까지 말아 주세요.”
“난 Finch 부근만 오면 자꾸 한국 생각이 나. 그게 나쁜 건 아닌데, 그냥 다 똑같이 느껴져. 헤어스타일도 다 똑같고 말이야. 오죽하면 다른 인종 사람들이 한인을 웬만하면 한 번에 잘 알아채겄냐.”
“그런 냉소적인 시선을 거두어 주세요. 그렇다고 해도 그것도 개인의 자유고, 취향일 수도 있잖아요. 그럼 이솝 님은 고유한 것을 알리는 것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시나요?”
“어차피 반응과 평가는 결국 시장과 대중이 하는 거긴 하지만, 아무튼 고유한 걸 잘 만들고 잘 알리면 좋지. 근데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난 한국에서 세계화를 목표로 삼고 이뤄지는 방식은 맘에 들지 않아. 오죽하면 김치 워리어라는 결과가 나오겠냐. 게다가 난 애초부터 K-pop, K-food 등의 이름부터가 맘에 들지 않아. 꼭 그렇게 K라는 단어를 붙여서 스스로를 서브 카테고리화를 해야 하나? 그냥 pop, food로 당당히 경쟁하면 안 되나?”
“왜 갑자기 열변을 토하시나요. 혹시 김치 워리어 제작 투자에 손실을 보신 건가요?”
“야 됐다, 그냥 집이나 가자. 아무튼 유행을 따라가기보단 유행을 만드는 거, 그게 얼마나 멋지냐 응?
“하여튼 입만 여시면 우리 은하 최고의 논객 이자 모든 것의 개척자이십니다. 그게 얼마나 힘든 건데…”
“엣헴… 흠흠… 그나저나 저기 한인마트가 보이네… 저기서 김치 저렴하게 팔던데… 하나 사 가는 거 어떠냐…?”
“피, 이솝님 도 다를 거 없네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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