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 모임] '천'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글들

권호 기자

kwonho37@daum.net | 2020-02-23 23:40:47

*사진출처:[클로드 모네의 '양산을 쓴 여인', 1886년 제작]

[뮤즈:hainsea 작가]

"엄마, 우유 솜사탕이에요!"
노란 병아리가 하늘로 고개를 치켜 종알, 부리를 조아댄다.
따라 저어보니 비싼 목화솜이 나무 위에 매달렸다.

사르락-

노랑은 치자
남색은 대청
자주는 꼭두서니
청남은 쪽풀
적갈은 청미래덩굴

창공을 노니는 제각기 너른 천과 나뭇가지를 감싼 꽃들

새하얀 구름이 넘 녹아
저 구름은 치자, 작은 것은 쪽풀이고
다음은 오리 방탱이 깔매나무 참나무 진달래 오디

와락-
병아리 닮은 노란 천을 둘둘 감은 아이가 제 엄마를 끌어안는다.
엄마는 하늘보다 더 크게 웃으며 아이의 손을 잡아준다.

아이의 어깨가 홀쭉하다.
겨우내 폭신하고 빵빵했던 팔뚝은 가늘어졌다.

목화솜 달린 것 보고 봄을 봤다.

점점이 매들린 뽀얀 속살
봉오리가 솜솜한 작은 털
목화인 줄 알았던 목련을 봤다.

[뮤즈:도현 작가] 여러 개의 천이 하나 될 때에.

혼자의 힘으로는 부족함이 역력하여 고개를 돌렸네.
눈빛으로 하나 된 그들은 의도가 순수하고 밝아 색이 빛이네.
빛 한 점 없고 적막한 질곡의 세계에 그들 고유의 색이 빛에 사무치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요동쳐 둥근 세상이 되었고, 다름의 다른 말은 화합과 행복일 거라 믿는 그들의 정신이 그들 주위에 아로새겨지네.
그들의 정신에 한이 더해지니 그 모습이 실로 장엄하고 장중하더라.
잿빛으로 침략당한 하늘의 마음을 헤아릴 길이 없어 바람조차 불지 않네.
그 하늘을 위로하듯 그들은 참고 참았던 마음의 소리를 펼쳐 보이네.
서슬 퍼런 것에 차가운 땅은 핏빛으로 물들어가고, 잿빛 하늘은 더욱더 어두워졌지만, 그들의 마음은 따스한 희망의 빛 안에서 깊은 잠에 빠져드네.

[뮤즈:송진우 작가] 양산을 쓴 여인

흐릿한 시야 속에서도 햇살은 여전히 반짝이고 하늘의 청명함은 가려지질 않는다. 태양을 마주 보겠다며 호기롭게 얇은 천을 두 눈에 두른 채 하늘을 올려다보길 2시간째, 이내 태양을 두 눈에 담지 못하고 동공이 찢어질듯하여 포기한다. 두 눈을 껌뻑이며 흘러나온 눈물에 적셔진 하얀 천을 풀고 봉긋 솟은 언덕으로 고개를 떨군다.
쨍한 햇빛에 잃어버린 색이 천천히 돌아오자 문득 하얀 뭉게구름인 줄 알았던 형상이 여자임을 깨닫는다. 태양을 등지고 서있는 탓에 그녀가 무엇을 바라보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나를 내려다보고 있음을 느낀다. 발목까지 하늘거리는 흰 천을 둘렀음에도 태양빛 아래에서는 속이 훤히 비쳐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긴다 글쎄, 자세히는 떠오르지 않지만 허리를 굵게 한번 휘감아 조여지는 새하얀 원피스 안에 드러나는 그녀의 몸은 상당히 가냘프고 매끈하다.
한참을 마주 봤을까 그녀는 언덕 아래 누워있는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고 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가늘게 떨리는 나의 턱과 가슴을 움켜쥔 채 키스를 해왔다. 나는 그저 긴 그녀의 치마폭에 덮인 채 턱을 들어 올린다. 계절의 냄새가 풍기는 바람은 긴 머리를 한번 휘감더니 소매 안으로 순식간에 불어 들어와 가슴팍의 맨살을 훑어 지나가고 짜릿한 감각을 남긴다. 세상이 멈춘 듯 했다. 모네의 까미유가 이랬을까.
잊혀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