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으며 누가 만든 것인가?

김경태

kwonho37@daum.net | 2020-02-18 19:25:39




창문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으며 누가 만든것인가?


[살인마 잭의 집, 2019년 2월 21일 개봉작]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늘 ‘문제작’을 들고 나왔다. 그는 예술이라는 것에 대한 본질을 탐구하는 영화를만든다. 이번 영화 ‘살인마 잭의 집’ 역시 영화제에서 관객들이 대거 야유를 보내며 이탈하는 해프닝을 만든 작품이다.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러하다. 잭이라는 연쇄살인범이 자신이 저지른 수많은 살인들 중 다섯가지를 고해하는 내용이다.



이 수많은 사건, 살인행위가 아닌 단 한 장면을 통해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선과 악에 관해 가지고 있는 여러 생각 중 하나를 파악해보려고 한다. 영화 후반부에잭은 창문 너머로 풀을 베는 사내들을 보게 된다. 풀을 베는 사내들은 잭에게 있어 중요한 요소이다. 어릴 적 그의 폭력성을 일깨워준 것이 바로 이들이기 때문이다. 잭은그들이 풀을 벨 때, 풀들이 잘려 나갈 때, 생명력을 느낀다고한다. 즉, 그는 죽음(혹은살생이라는 행위)를 통해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게그는 오리의 다리를 자르며 살생을 가까이하기 시작한다.




[오직 '잭'에게만 한정되는 것인가? 천국이냐 지옥이냐는 단지 사물을 대하는 시선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그러나 해당 장면에서 풀을 베는 사내들이 위치한 곳은 잭이 갈 수 없는 천국이다. 그리고 창문을 두고 잭은 지옥으로 향하는 길에 서있다. 여기서 아이러니한지점이 생긴다. 잭이 저지를 모든 행동의 근간은 풀을 베는 사내들의 살생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잭의 행동에는 그들 역시 일종의 책임이 있으며 동시에 그들도살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천국, 잭은 지옥에간다. 같은 살생이고, 잭과 사내들에게서 모두 죄책감과 후회는찾아볼 수 없다. 그저 살생의 대상이 사람이냐 풀이냐 차이인 것이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여기서 인간의 이중성을 잘 꼬집는다. 관객을통해서 말이다. 관객은 잭의 행동에 대해서 불편함을 호소하지만 정작 풀을 베는 장면에서는 그렇지 않다. 모든 생명의 가치는 동등한 것이 아닌가? 벌레를 죽이면 박수를 받지만사람을 죽이면 벌을 받는다. 사람들이 상식이라고 생각할만한 지점을 교묘하게 해체시켜 그 실체를 바라보게만든다.



천국과 지옥을 갈라놓는 창문. 이 창문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이 질문은 단지 창문의 재질이 아닌 경계를 구축하는 요소를 묻는 질문이 될 수 있다. 즉, 도덕적 잣대는 어디서 오는 것이며, 이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잭은 집을 지으며 시종일관 재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각 재질은 고유한 의지가 있다는 것. 의지가 있다는 것은 재질마다 각자의 욕망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창문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도덕과 비도덕, 선과 악, 천국과 지옥의 경계는 개인의 고유한 의지, 욕구로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잭은 지옥으로, 사내들은 천국으로 간 것은 아닐까. 잭이 이야기하는 각각 재질이고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지점은 라스 폰 트리에 감독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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