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통장과 연하남의 상관 관계
구질구질하고 순수했던 나의 연하남이여
Jess
kwonho37@daum.net | 2020-02-08 16:27:59
오랜만에 은행을 가는 김에 서랍 깊숙이 잠들어 있던 통장을 꺼냈다. 대체 몇 년 만에 하는 통장 정리인지 ATM기 앞에 한참을 서 있었던 것 같다. 끝없이 이어지던 반복적인 기계음이 끝나고 비죽 내밀어진 통장을 잡아 들었을 때, 무심코 눈에 들어온 활자들은 전혀 예상치 못하게 나를 당황시켰다.
30,000₩ ------- 늦어서 미안
20,000₩ ------- 사랑해 누나
50,000₩ ------- 보고 싶어요
한 달 단위로 꼬박꼬박 이체된 소박한 금액들, 닭살 돋게 스윗한 이체 메모, 아아- 이런 짓을 할 사람은 단 한 명, 내 인생 유일했던 연하남뿐이다. 한참 동안 내 인생에서 잊혀져 있던 그는 그렇게 뜬금없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내 인생 처음이자 아마 마지막으로 사용했던, 데이트 통장 때문에.
유난히 그 흔적들이 당황스럽게 다가왔던 이유는 내가 데이트 통장을 사용한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새까맣게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누가 데이트 통장을 쓰냐고 말했던 나인데- 그게 바로 나였다니? 너무나 선명한 증거를 눈 앞에 두고도 한참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당시 연하남은 대학생이었고 나는 갓 취업한 사회 초년생이었다. 서울과 대전을 오가는 장거리 연애인 데다 부모님 용돈을 받아 쓰는 상황이니 남자 친구의 주머니는 항상 가벼웠을 것이다. 나 역시 초라한 자취방에 형편없는 월급을 받는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직장인이니까, 누나니까 더 많이 냈고 더 많이 배려했다. 물론 남자 친구도 그걸 당연시하지는 않았다. 늘 고마워하고 미안해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더 잘해주고 싶었고 그렇게 우리는 그 시절 가난하지만 예쁜 사랑을 할 수 있었다.
요즘 우스갯소리로 가성비 데이트로 밥버거를 먹으러 간다-, 많이들 놀리는데 진짜로 그 통장 내역에는 밥버거가 찍혀 있었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졌다. 통장 목록에는 김밥천국이라든가 분식집 같은 저렴한 메뉴들만 나란히 줄 서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서울-대전을 오가는 왕복 이만 원 내외의 무궁화호 예매 내역도 꼬박꼬박 찍혀 있었다. 그렇지, 데이트를 위해 오는 거니까 그의 차비도 공금에서 사용하는 게 당연한 것이지. 여전히 믿기지 않고 내게 남아 있는 기억의 자투리도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잘 생각해보니 남자 친구의 빈곤함을 안쓰럽게 생각했던 내가 먼저 데이트 통장을 제안했던 것 같다. 절대 그가 먼저 "누나, 우리 데이트 통장 쓸까? 내 차비도 데이트 비용인데 같이 내야지!"라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비어 있는 내 계좌에 둘 다 매달 꼬박꼬박 이체를 했는데, 그나마 남자 친구는 금액을 덜 넣거나 늦게 넣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이체 메모가 그토록 사랑스러우니 봐줄 만했을 것이다. 마냥 행복했을 것이다. 더 재밌는 것은, 집에 와서 컴퓨터를 뒤지던 중에 내가 정리해 놓은 커플 통장 가계부까지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조금도 기억에 남아 있지 않지만 내 성격상 충분히 할만한 짓이다. 사진도 편지도 없앤 지 오래지만 끈질기게 남아 있던 연애의 흔적 덕에 새삼스레 그와의 추억을 곱씹어 볼 수 있었다.
저희 세 명인데, 여기로 와도 돼요?
그렇게 만났다. 졸업반 시절, 불타는 금요일을 그냥 흘려보내기 아쉬워 친구와 함께 찾은 호프집에서. 그 호프집에는 테이블마다 모니터가 달려 있어 바로 주문도 할 수 있고 다른 테이블과 함께 게임도 참여할 수 있었다. 상품으로 나오는 소주나 안주가 쏠쏠했기 때문에 친구와 나는 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었는데, 갑작스레 우리 테이블의 커튼을 젖히고 등장한 그 남자애는 첫눈에도 앳돼 보였고 그 풋풋함이 귀여웠다. 보통 그렇게 합석을 해서 만난 사람에게는 서로 기대가 낮은 법이다. 그냥 그 날 그렇게 애기들이랑 즐겁게 놀았다, 생각하고 잊어버리려는데 자꾸만 꼬박꼬박 연락이 왔다. 내 사전에 연하남이란 없었는데,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고 나랑 눈높이도 똑같았던 그 애를 그저 귀여워서 한 번 만나고 두 번 만나다 보니 어느새 남자 친구가 되어 있었다. 고백하는 그 순간조차 그 애는 정말로 사랑스러웠다. 늦은 밤 한적한 공원을 몇 바퀴쯤 뱅뱅 돌다가, 누가 봐도 고백할 사람처럼 한참 뜸을 들이고 망설이다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누나의 남자 친구가 되고 싶다고, 가까스로 그렇게 말했으니까. 나는 그 애가 귀여워서 죽을 것 같았다. 그때는 그랬다.
내가 졸업을 하고 서울로 취직을 할 때까지, 그러니까 거의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는 잘 만났던 것 같다. 나도 어렸고, 그 애는 더 어렸으니까 같이 참 멍청하고 무모한 짓도 많이 했다. 어려서, 뭘 몰라서, 청춘이니까- 라는 말들로 포장될 수 있는 모든 행위들을 그 애와 했던 것 같다. 공부랑은 담을 쌓았지만 참 착하고 순수한 친구였다. 강아지처럼 나만 보고, 내 말을 잘 듣었을 테니 그게 좋았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도 결국은 직장인-대학생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장거리 연애가 되며 몇 번 위기가 닥치고, 두세 번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했지만 결국에는 끝이 났다.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이젠 진짜 끝이라고, 일방적으로 선전포고를 했다. 그 애는 나처럼 칼같이 돌아서지를 못했다. 그게 마음처럼 안 됐을 것이다. 첫사랑이었으니까.
갓 직장인이 된 나는 사회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대학교 안 개구리인 남자 친구는 당연히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왜 문자 한 통을 못 하는지, 회식 자리에서 왜 일찍 빠지면 안 되는지, 계속되는 그의 무수한 서운함들은 내게 어린애의 칭얼거림으로 밖에 다가오지 않았다. 평일 저녁에 남자 친구와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고, 힐 신고 발 아프게 돌아다닐 필요 없이 조수석에 앉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다. 어쩌면 내가 사회에 물들어 그저 그런 속물이 되어가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는 어찌 되었건 간절히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내가 그 아이를 많이 사랑했던 것도, 가장 열렬히 사랑했던 시절이었던 것도 맞지만 분명한 것은 내게 그 애는 첫사랑이 아니었다. 나는 이미 첫사랑과 절절하고 구질구질한 이별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 사랑이 지나가도 또 다른 사랑이 온다는 것을, 세상에 나를 기다리는 인연들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애는 아니었던 것이다. 모든 게 처음이고 낯설었다. 그러니 아마 나는, 그에게 썅년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이젠 괜찮아졌나 보네, 싶을 때면 어김없이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긴 문자가 와있었다. 잠잠한 것 같아 페이스북 친구를 끊었더니 득달 같이 왜 끊냐고, 말 안 걸 테니 제발 친구 목록에 남아 있으면 안 되겠냐고 애원했다. 뭐니 뭐니 해도 그 애가 정말 비참했던 순간은, 내게 새 남자 친구가 생긴 이후에 굳이 나를 만나러 서울까지 왔던 때일 것이다. 이미 우리가 헤어진 지도 한참 지난 뒤였다. 그 애는 그냥 한 번 마지막으로 만나서 얘기만 들어 달라고, 정말 마지막이니 마무리를 하게 도와달라고 그랬다. 커피숍에서 만나 용건만 간단히 하고 헤어질 생각이었는데 굳이 술집에 가자고 떼를 부렸다. 서부역 뒷골목, 주막 같이 푸근한 술집에서 막걸리를 연신 들이켜더니 그 애는 꼬장을 부리기 시작했다. 누나 집에 가고 싶다고, 집에 가서 얘기를 하자고. 나는 여전히 그 애가 귀여웠고, 안쓰러웠고, 조금은 우쭐했다. 급기야는 엉엉 울기 시작하더니 본인이 원하던 '멋진 마무리'의 근처에도 가지 못한 채 그대로 뻗어 버렸다. 완전히 정신을 잃어버린 그 애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고 결국엔 당시 남자 친구까지 달려왔다. "저기요, 정신 차리세요. 친구, 일어나 봐요." 연적이라기보단 자신의 과거를 보는 것 마냥 측은지심이 앞섰을까. 매너 좋게 그를 부축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핸드폰을 뒤져 절친에게 전화를 했고, 한참 동안 연락이 안 되다 가까스로 닿은 친구는 다행히 그의 오늘 행적을 알고 있었다. 한숨을 쉬며 데리러 가겠다고, 30분이면 간다고. 설상가상으로 테이블에 뻗어 있던 그는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무런 기억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구토와 뒤섞여 뻗어 있는 그를 놔두고, 나와 남자 친구는 먼저 자리를 떴다. 굳이 그 친구까지 삼자, 아니 사자대면을 해봤자 더 이상한 그림만 나올 것 같아서였다.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아 계속 뒤돌아보다 찜찜한 마음으로 집에 도착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그 애를 데리러 온 친구였다. 잔뜩 화가 난 목소리였다. "아니 누나, 그런데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애를 그냥 버리고 가요? 이럴 거면 오늘 왜 만나주신 거예요?" 짜식 의리 있네, 친구 하난 잘 뒀다 싶으면서도 내가 욕먹는 건 좀 억울하다. 남자 친구 있는 것도 알고 있었고 오늘 만나면 다시는 연락 안 하겠다고 해서 억지로 만난 거다, 쏘아붙이니 바로 180도 태도를 바꾼다. "아.. 그런 거면.. 죄송합니다!"
기억력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내 기억으로는 그 애로부터 받은 마지막 연락이 아마 그다음 날이었을 것이다. 구구절절하게 장문으로, 큰 실수를 했고 너무 미안하다, 앞으로 정말 연락 안 하겠다, 잘 살아라-. 뭐 그런 내용이었을 것이다. 나는 사실 그런 일이 있고도 그가 여전히 귀여웠다. 왜냐면 그 애가 겪었을 격한 감정의 롤러코스터, 영영 이불을 차게 될 흑역사들은 나에게도 똑같이 일어났던 일이기 때문이다. 첫사랑이 원래 그런 것 아니겠는가. 지금은 죽을 것 같더라도 생은 계속 이어지고, 더 설레는 사람이 나타나고, 아픔은 추억이 될 때쯤엔 마침내 "아, 진짜 그땐 왜 그랬나 몰라 쪽팔리게ㅋ"라고 쿨하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찾아오고야 만다.
다행히 그 이후로부터는 그럭저럭 잘 사는 것 같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니 말이다. 경찰 시험에 붙어서 꼭 다시 찾아온댔는데, 지금쯤 사랑도 여러 번 해보고 어엿한 성인이 되었을 그 애가 못된 첫사랑 누나 따위 떠올리지 않겠지만 혹여 나타난다면 이제는 술 대신 차 한 잔을 주고받으며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 이후로 어떤 사랑을 했는지, 어떻게 성장했는지, 지금 꿈은 무엇인지. 너무도 순수하고 착해서 못된 나조차도 데이트 통장을 쓰고 싶게끔 만들었던 그 애가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지만 또 그만큼 알고 싶지 않기도 하다. '놈'이나 '새끼' 따위의 수식어 없이 추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구남친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몇 년 전 뜬금없이 온 페이스북 친구 요청에 망설이다 '수락'을 눌렀지만 정말 약속처럼 내게 말 한마디 걸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건 우리 사이의 암묵적인 약속일 지도 모른다. 그대로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말고 이 거리를 유지하자. 딱, 과거의 우리를 망각하지 않을 정도로만. 그럼 영원히 너는 나의 순수한 연하남으로, 나는 너의 첫사랑으로 남아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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