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의 오해는 나에 대한 반성
오해가 오만이 되지 않기 위한 나의 결심
이정준
kwonho37@daum.net | 2019-12-07 16:26:21
[라이터스:하리하리 작가]산다는 것은 사람들을 오해하는 것이고, 오해하고 또 오해하고 또 오해하다가, 신중하게 다시 생각해 본 뒤에 또 오해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
필립 로스 [미국의 목가] 中
삶은 오해의 연속이다. 사람들이 누구나 하는 오해에서 망상은 시작되고, 그 망상은 사람들의 기질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웃기는 건, 그 망상이 시간이 지나며 반복되면 내 머릿속에서 사실로 굳혀지게 된다. 내 머리가 착각을 사실로 믿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오랫동안 그 착각이 옳다고 여겨 왔던 믿음을 흔들 만한 충격을 경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사실, 그런 계기를 맞이한다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다. 내가 그랬다. 오늘 나는 그 행운을 맞이했고, 그 행운 덕분에 망치 100t짜리를 여러 번 머리에 맞은 듯한 충격에 지금도 휩싸여 있다. 정확히는 감추고 싶었던 치부를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의 알력으로 마주한 기분은, 경험해 보지 못한 자가 아니라면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10여년 째 연락하던 선생님과 방금 만나고 왔다. 철모를 때 좋아하던 선생님이었다. 물론 지금도 좋아한다. 그러니까 찾아갔겠지?! 그 선생님 덕분에 수학 공부에 열중할 수 있었고, 문과생 치고는 수학을 참 잘 한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애석하게도 그 수학 실력을 극대화하는 일을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철저히 소위 말해서, 문과적 사고 방식이 돋보이는 글쓰기를 하며 여차저차 먹고 살아가는 중이다. 사실 5월에 뵙고, 가을에 찾아뵙는다고 약속해 놓고 (선생님은 완전히 까먹으신 듯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죄를 사하기 위해 어제 불쑥 연락드려서 바로 그 다음 날인 오늘 점심에 찾아뵙게 된 것이다.
뭘 먹었는지, 뭘 마셨는지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고 그냥 사는 얘기를 두루두루 하다가 얘기 말미에 어렵사리(솔직히 나를 오래 본 선생님답게 어려워 보이지는 않으셨지만...) 나에 대해서 그간 묵혀 두었던 말을 꺼내셨다. 감사하게도 선생님께서는 나의 능력이 다방면에 걸쳐서 두루 뛰어나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런데 그 능력이 저평가될 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저를 집어넣는 것 같다고 봐 주셨다. 너무나도 찔렸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정말 그랬다. 나는 하루라도 나를 어딘가에 표시 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만 생각했다. 그 증상은 회사를 나오고 사실 더 심해졌다. 어차피 내가 하는 일이 고스란히 월급이나 금전적 가치로 돌아오는 것이 아닌 만큼 불안했나 보다. 게다가 내가 누군가에게 나의 글을 전달해 주는 위치에 있고, 그것이 곧 일이다 보니 무의식 중에 그들에게 정신적 갑의 위치에 서 있었던 것 같다. 일과 일상을 구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내가 말하는 방식에 있어 스스로가 뭔가 지시하는 위치에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어린 시절에 아픈 기억에 기인한 발화 태도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왕따를 당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잘난 척 한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담임 선생님의 중재로 문제는 심각해지지 않았고, 초기에 해결되기는 했지만 그 때의 여파는 지금까지 이어졌다. 일상적으로 말을 할 때에도 조심하는 편이다. 이런 증상은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하게 되면서 좀 더 심해졌다. 글이란 게 애초에 정답이 있는 항목이 아니지 않은가? 누구의 글이라도 존중받아야 하는 것은 마땅하지만 사용하는 표현이나 어휘에 있어서 조금은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맞으니까. 그걸 상대에게 납득시키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할 때에도 언제나 "이럴 수도 있다." 류의 맺음말로 끝낸다. 이렇게 끝냈으면 태도 역시 좀 더 openness가 강해야 하는데, 또 돌이켜 보면 태도는 굉장히 고압적이었던 것 같다(이 글을 읽거나 나와 대화했던 분들이 그렇게 봐 주지 않으시면 다행인데, 여하튼 내가 돌아본 내 모습은 그랬다).
어휘나 표현은 상대를 존중하는 듯 하지만, 태도는 존중하지 않았던 나. 굉장히 거만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나는 거만하지 않다고 스스로를 착각하다 보니 계속 더욱 많은 말을 쏟아냈다. 게다가 회사를 나와서 나 혼자 오롯이 살아가야 먹고 산다고 생각한 만큼 더욱 나를 세상 바깥에 표현하는 빈도가 늘었다. 일일이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러면서 분명 나도 헛손질을 했을 거고, 내 헛손질이 누군가에게 가슴에 남을 상처를 안겼으리라 생각한다. 정말로 부끄러웠다. 선생님의 짧지만 굵직한 메시지가 나의 고민을 가중시켰다.
선생님께서는 얘기해 주셨다. "100의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과 90의 지식에 10의 쑥스러움을 가진 사람 중 고르라면 나라도 후자를 고를 것이다." 라고. 나는 그 동안 후자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단언코. 아까 중화역에서 두 정거장 정도 되는 거리를 터덜터덜 걸으며 어머니가 생각나 전화를 걸었다. 최근에 어머니가 아프셔서 걱정도 되고, 어머니에게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좀 더 조언을 구하고 싶기도 했고. 어머니는 말씀해 주셨다.
"모든 얘기, 일, 답장을 하기 전에 한숨을 깊이 쉬어 보라."
고. 이게 그 병을 얼마나 빨리 낫게 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가 은행이란 직장에서 30여년을 큰 탈 없이 살아 오게 만든 힘이 아닌가 싶다.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나 돋보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지만, 그 인정이 그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끓어오르는 진심이 아닐 듯 했다. 그리고 나 역시도 나에 대해 100, 있는 그대로 평가받게 하고 싶다면 잠깐의 멈춤은 필요해 보인다. 부모님이 귀에 가시가 돋히도록 얘기해 주셨지만, 귓등으로도 안 듣던 내가 이 얘기를 듣고 머리가 아픈 것을 보면 이제 나도 진중해져야 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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