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이 행복의 유효기간을 늘임
어차피 다들 재촉하는데, 나라도 나를 재촉하지 않기를
이정준
kwonho37@daum.net | 2019-11-18 17:15:00
남들이 하는 일은
나도 다 하고 살겠다며
다짐했던 날들이 있었다.
어느 밝은 시절을
스스로 등지고
걷지 않아도 될 걸음을
재촉하던 때가 있었다는 뜻이다.
박준 [그늘] 中
나는 4수를 했다. 정말 다행히도 4수 끝에 꽤 인정받을 만한 대학에 들어갔다. 그 결과는 좋았지만, 나에겐 높은 대학이란 결과를 성취했다는 만족감보다는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지에 대한 고민이 더 커졌다. 내가 입학한 나이가 23살이니까 군대에 갔다오고(근육질도 아닌데, 1급이 나왔다. 병무청의 병역검진 체계에 대해 상당히 의문을 제기했던 순간이었다.) 휴학 없이 학교를 다니더라도 29살 2월에 졸업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이런 생각으로 1학년을 보내다 보니 약간의 조바심이 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두 가지 마음이 충돌했다. 어렵게 대학생이란 타이틀을 얻었는데, 놀고 싶기도 했다(학교 축제, 주점, 신입생 행사 등등). 같은 나이에 입학한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과 동기는 과 대표도 하면서 즐거이 사는 모습이 부러웠다. 나도 그러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행사에는 참여하면서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대학 생활을 온몸으로 만끽했다. 그 당시 사귀던 친구가 운이 좋게도 함께 우리 학교에 왔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캠퍼스 커플로써 반년을 무사히 보낸 뒤, 나는 입대를 했다.
햇볕이 따가운 25살 8월, 나는 민간인으로 돌아왔다. 1학년 1학기. 회사에 다닐 때 보니까 26살인데 졸업해서 회사원이 된 남자 동기들도 있던 것을 보면 내 첫 출발이 산술적으로만 봤을 때, 얼마나 늦었는지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첫 학기는 복학생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열심히 공부했다. 그 공부 덕분에 어느 정도의 학점을 받았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대단한 학점도 아니었다. 물론 돌이켜 보면 그 때가 최고의 학점이었다. 몇 년 뒤에 다시금 생각해 보면 정말 공부가 하기 싫었나 보다. 아니, 정확히는 공부에 질렸었다. 매 순간 반복되는 책상 앞에서의 삶, 군대를 갔다 와도 계속되는 업보 속에 지쳤었다. 해방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동아리를 만들었고, 사회적 기업을 만들었다. 가시적 성과가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 때 했던 뜬구름 잡는 얘기들이 참 즐거웠다. 휴학을 할 수는 없다는 의식은 강했고, 공부는 하기 싫어 딴 활동을 하며 나를 다졌고, 그렇게 나의 학점은 조금씩 떨어졌다.
이미 늦어진 삶, 더더 늦어지지 란 생각이 컸나 보다. 그런데 주위에서, 특히 나의 부모님은 그런 나를 용인하지 못했다. 그래서 크고 작은 갈등이 계속되었다. 내가 대개의 또래들과 같지 않은 삶을 살고, 안 그래도 늦은 출발선에 선 내가 그들을 쫓아가기 위해 애쓰지 않는 모습에 혼을 참 많이 내셨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난 그 때의 선택이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엄마, 미안...). 그 때 만난 소중한 인연들이 내가 세상을 보는 관점을 좀 더 윤택하게 갖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이 당시 만났던 많은 이들이 나에게 줬던 용기가 퇴사란 중차대한 결정을 정말 갈등 없이 하게 만들어 준 것 같기도 하다.
이 나이에 퇴사하면 뭐하려고? 당연히 들어 왔던 질문이겠지만, 생각보다 그런 질문을 많이 안 들었다. 우선, 그런 질문을 할 법한 사람을 잘 안 봤다. 피했다는 것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주는 압박감, 퇴사 후 막막함이 주는 괴로움은 그들이 말하지 않아도 나 혼자서도 충분히 고민하고 있는 문제이다. 게다가 퇴사하고 나서 어느덧 8개월이 지났으니 이제 경력직이라고 하기도 뭐하다. 게다가 이전에 하던 일인 구매 일과 지금 하는 인사 관련 일은 성격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이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어떻게 살려서 이 분야의 전문성을 키워야지, 그간 쌓아 왔던 이력에 발목 잡혀 다시 돌아가서는 안 된다. 더욱더 내 인생을 꼬이게 만드는 길이다.
둘째, 긴 호흡으로 퇴사 후 삶을 준비했다. 사실 이 회사는 관두려고 했다. LG그룹이란 것을 제외하고 그 곳에서 하는 일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 역시도 의도치 않게 소모성 자재 구매 일을 했다. 사람의 인생이 원래 마음 먹은 대로만 굴러간다면 참 쉽겠지만, 그럴 수 없는 것 역시 누구나 알고 있다. 안 그래도 느린 삶이 더 느려지게 되었다. 자신 있게 느림을 선택한 것은 회사에 있으면서 나름대로 제2의 인생을 준비했던 덕이다. 여러 방편으로 준비하고 실험했고, 그런 실험을 거친 뒤 쌓인 자신감이 좀 느려도 괜찮다는 확신으로 발전했다.
돌이켜 보면 정말 2018년은 다사다난했다. 몇 년 뒤,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결정을 했고, 이 결정이 분명 나의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게 뻔하다. 하지만 두렵지 않다. 남들보다 늦어진다고 해서. 왜냐하면 나는 지금의 이 과정들마저도 정말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확실히 남들이 걷던 길이 아닌 다른 길이라고 해서 틀린 길은 아니다. 지금도 이전 회사에 있던 이들이 이직을 하거나 자기소개서 하면 나를 떠올린다. 조금 느리지만, 주변에서 재촉할지라도 뜻을 꺾지 않는다면 뭐, 언젠가 머릿속에 그리던 위치에 있지 않을까? 그렇게 똑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니 보는 곳은 똑같지 않아도 그 다름을 주제로 대화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란다는 말이 좀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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