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 투더 퓨처

서대문에서 열린 이동예술관 프로젝트에 참여해 쓴 연극배우 정현찬님의 이야기를 각색하다

권호 기자

kwonho37@daum.net | 2019-08-02 21:42:00



빽투더 퓨처. 정현찬님의 이야기를 듣고 상상하다.




소박함이란 뭘까. 생각해본다.


대청 마루에 누워있다가, 전화가 울리면 몸 한번 굴려서 닿지 못하고 으레 배에 힘을 주고 일어나 걸어갔다가 집 안의 누군가 전화를 받으러 왔으면 힘이 축 빠져 내 방으로 터덜터덜 걸어가야 한다.


소박하다는 건 지금이나 그때나 불량식이지만 너무 싸서, 100원에 이 만큼을 주는게 놀라워 이런거 파는 문방구 아저씨랑 조금이라도 친해져볼려 하는 그런 느낌 같다.


소박하다는 건 하고 싶은 말 다 못하고 동전 떨어지는 소리에 이런 말 저런 말 중에 가장 긴박한 용건만 하고 못내 한 말 곱씹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씹히는 그 씁씁하고 달콤한 뒷맛이 아닐까 싶다.


기억난다. 계란초라는게 있었다. 삶은 계란을 칼로 반을 잘라 오이 조금을 얹어서 또 초장을 얹어 200원에 파는 분식집. 그거...그게 너무 먹고 싶어, 아니 그거를 먹을 수 있어서 하루를 살았다. 더 비싼건 맛이 없었다. 계란의 텁텁함을 오이가 잡아주고 오이의 비린맛을 초장이 감싸준다. 이런 조화로운 음식을 단 돈 200원에 판다는 사실에 아저씨의 인정이 느껴져. 그 하나를 먹으면 너무 행복했다.



그런 소박함을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갑자기 인스타그램 필터처럼 하루가 노랗게 바뀌고 하늘이 과거의 앨범 사진처럼


칙칙한 색이 됐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걸까.



누가 나를 부른다.


날 현찬이라고 부르는 그 친구는 지금은 연락이 안되는 내 어릴 적 친구다.


아침에 삐삐 보낸거 확인 했냐며 멀리서 핫도그를 들고 달려온다.


핫도그 얼마냐고 주머니를 뒤져보지만 십원짜리 몇 개만 딸랑거리는데 친구가 반씩 나눠먹자며 대뜸 반을 먹고 내게 내민다. 한 입 베어무는데 또 한쪽 주머니에선 핸드폰이 울린다. 친구가 그게 뭐냐고 묻는다.


난 자랑스럽게 이건 미래의 물건이며 내가 연락하고 싶은 사람한테 지금 즉시 연락할 수 있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어린시절의 친구가 대뜸.


미래 재미없네. 라고 말한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핸드폰을 들어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을 보여주고 이 놀라운 기술을 직접 보라고 얼굴에 들이밀어도 친구는 관심없는 표정으로 핫도그만 먹는다.


지금은 카카오톡의 메시지 1이 사라지지 않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러면 안 읽었다는 거야. 신기하지 않아?’


친구의 마지막 말이 의미심장하다.


‘불확실하구나. 미래는 매우 불확실한 곳이구나’



쑥스러운 표정으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 속으로 사라진 핸드폰은 다시 잡히지 않았다. 친구가 갑자기 벨 누르고 튀기를 하자고 제안한다. 현찬아 저 집에 예쁜애 산다? 잘 하면 사귈수 있을지도? 그런 이상한 물건 버리고 우리 진짜를 찾자.


망설이는 나에게 친구가 주머니에서 아폴로를 꺼내 입에 물린다. 닥치고 하자는 의미다.



벨을 눌렀다.


떨린다. 너무 그리운 이 떨림.


이 순간이 너무 그리웠다.


소박하지만 너무 확실한 행복이다.


내 마음에 사라지지 않던 의문문 하나가 비로소 쏙 하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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