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조선, ‘어디서 짓나’보다 ‘누가 미국에 남나’…현지 거점 경쟁 본격화
美 민주당 양원 탈환에 ‘해외 건조 군함’ 문턱 높아져
한화 ‘건조 실적’, HD현대 ‘신설 조선소’, 삼성 ‘설계·정비’
기자재 국산화 요건은 새 숙제
이국열 기자
lkt838@hanmail.net | 2026-11-09 07:00:20
[소셜밸류=이국열 기자] 국내 조선사의 미국 해군 함정 전략이 ‘한국에서 지어 보내기’에서 ‘미국 안에서 짓고 고치기’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3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을 함께 되찾으면서, 국내 조선소에서 미 군함을 짓는 길은 더 좁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9일 업계에 따르면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의 큰 틀은 유지되겠지만, 기업마다 미국 시장에 들어가는 경로는 다시 짜야 하는 상황이다.
◇ 3사 3색…‘현지 거점’ 확보 방식 갈렸다
가장 앞선 곳은 한화다. 한화디펜스USA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 해군의 선박건조관리업체(VCM) 토트서비스와 중형상륙함(LSM) 1척 건조 계약을 맺었다. 계약 규모는 2억6900만달러(약 3575억원)이고, 3척을 추가로 지을 수 있는 옵션이 붙었다.
건조는 2024년 인수한 필리조선소가 맡는다. 2027년 4분기 착공해 2030년 인도할 예정이다. 한국계 조선소가 미 해군 함정을 새로 짓는 것은 처음이다. 미국 땅에서 짓기 때문에 해외 건조 제한 논란에서 비켜나 있다. 미 해군이 LSM을 모두 35척 도입할 계획이어서 후속 물량 경쟁에서도 유리한 고지에 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HD현대는 인수 대신 신설을 택했다. 지난달 22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미국 최대 건설·엔지니어링 기업 키윗과 합작법인 ‘HD키윗조선’ 설립 계약을 맺었다. 미국 남부·서부의 복수 후보지를 검토하고 있으며, 2027년 착공해 2029년 가동하는 것이 목표다.
초기에는 군수지원함과 상선을 겨냥한다. 가동까지 남은 3년의 공백은 울산에서 하는 미 해군 MRO(유지·보수·정비) 실적으로 메우는 구조다.
삼성중공업은 설계와 정비로 우회로를 찾고 있다. 미국 제너럴다이내믹스 나스코와 함께 미 해군 차세대 군수지원함(NGLS) 개념설계에 참여하고 있다. 미국 MRO 전문 조선사 비거마린과 손잡고 7함대 지원함 정비 입찰에도 나섰다. 자체 조선소를 확보하지 않고도 미 해군 사업의 레퍼런스를 먼저 쌓겠다는 전략이다.
한 대형 조선사 관계자는 “미국 정치 지형이 바뀌어도 현지에서 짓는 배는 논란에서 비켜 갈 수 있다”며 “현지 투자를 먼저 한 기업이 앞으로 함정 사업에서도 유리한 위치에 설 것”이라고 말했다.
◇ 백악관은 ‘허용’, 의회는 ‘제한’…관건은 ‘전투함’의 정의
미 행정부와 의회의 방향은 엇갈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국가안보 대통령 각서를 통해, 미국 조선소에 투자한 외국 기업이 수상전투함·통합화물 보급 유조선·로로선을 선종별로 초기 2척씩 해외에서 건조할 수 있게 했다.
의회는 반대로 움직였다. 지난 7월 22일 하원을 통과한 2027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에는 해외 조선소에서 건조해 미 군함(USS)으로 취역할 전투함에 해군 예산을 쓰지 못하게 하는 조항이 들어갔다.
상원 군사위원회 안은 대통령의 국가안보 면제권을 없앴다. 대신 미국 해양산업에 투자하는 조건으로 벌크 연료선과 전략수송선(로로선)만 선종별 최대 2척까지 동맹국에서 조달할 수 있게 했다. 전투함은 어느 안에서도 허용되지 않았다.
업계가 주목하는 대목은 하원 조항의 범위다. 금지 대상이 ‘USS로 취역할 전투함’으로 한정돼 있어, 민간 선원이 운용하는 USNS급 지원함은 해석의 여지가 남는다. 국내 업계가 “지원함부터”를 말하는 이유다.
하원 조항을 주도한 민주당 재러드 골든 의원은 지난달 29일 양원 군사위 지도부에 이 조항을 최종안에 남겨달라고 요구했다. 여기에 민주당이 상원에서 무소속을 포함해 54석을 확보하고 하원 과반을 차지하면서, 의회의 견제는 더 강해질 전망이다.
중간선거에서 야당이 상·하원을 함께 되찾은 것은 2006년 이후 20년 만이다. 한 통상 전문가는 “민주당이 의회를 주도하면 한국 조선소에서 미국 군함을 건조하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협력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은 낮다는 게 업계의 판단이다. 민주당 마크 켈리 상원의원과 공화당 토드 영 상원의원이 공동 발의한 ‘미국을 위한 선박법(SHIPS for America Act)’은 일부 내용이 하원 국방수권법에 반영됐다. 미국 조선업 재건은 양당이 함께 추진하는 과제라는 뜻이다.
◇ 현지 조선소도 ‘외국계 꼬리표’…기자재 국산화 요건은 새 변수
현지에 짓는다고 모든 문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원안에 담긴 선박법 조항은 외국인이 소유·통제하는 기업의 선박이 미국 선박으로 인정받으려면 별도의 해양 특별보안협정을 맺도록 했다.
한국은 우려국이 아니어서 결격 사유는 아니다. 그러나 한화와 HD현대의 미국 법인 모두 보안·지배구조 관리 부담을 안게 된다.
국내 기자재 업계에는 더 직접적인 변수가 있다. 하원안 1012조는 함정 건조의 국산화 요건을 보조장비, 추진계통 부품, 선박 크레인까지 넓혔다. 이 조항이 최종안에 남으면, 미국 현지 조선소가 수주하더라도 한국산 기자재가 들어갈 자리가 좁아질 수 있다.
◇ MRO는 중소 조선사·협력사의 숙제
함정 MRO(Maintenance(유지), Repair(보수), Overhaul(정비·분해수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미 연방정부 지출 자료를 분석한 보도에 따르면, 올해 5월까지 시작된 미 해군 MRO 26건 가운데 한국이 가져간 것은 4건이었고 대형 사업은 모두 미국 현지 조선소에 돌아갔다.
미국 본토와 괌을 모항으로 하는 함정은 원칙적으로 해외 정비가 제한되기 때문에, 국내 수주는 7함대 지원함에 몰려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2026년부터 2030년까지 990억원을 들여 중소 조선소의 미 해군 MRO 진출을 돕기로 했다. 한국수출입은행은 협력사 인증 비용의 70%를 지원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비용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청·재하청까지 갖춰야 하는 미 국방부 사이버보안 인증(CMMC) 같은 요건이 협력사에 큰 부담이라는 것이다.
◇ 핵잠 협력, 의회 검증대 오른다
방산 분야에서는 한국 핵추진잠수함 협력이 변수로 떠올랐다. 핵잠용 연료를 미국에서 들여오려면 미국 원자력법 91조에 따른 별도 협정이 필요하다. 우라늄 농축·재처리 권한을 넓히려면 원자력법 123조에 근거한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해야 한다. 둘 다 미 의회의 심사를 받는다.
에드 마키 의원 등 민주당 상원의원 4명은 지난 1월 30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냈다.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할 경우 우라늄 농축·재처리를 금지하는 ‘골드 스탠더드’를 적용하라는 요구였다.
핵잠을 누가 어디서 건조하는지, 연료는 어디서 생산하는지도 따져 물었다. 의회 주도권이 민주당으로 넘어가면서 비확산 검증은 한층 엄격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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