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칼럼] 평론인가 편향인가...위근우의 '참교육' 오독
한지원 기자
kanedu2024@gmail.com | 2026-06-14 13:54:44
넷플릭스 시리즈 '참교육'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공개 직후 넷플릭스 글로벌 비영어 TV 부문 정상에 오르며 국내외 시청자들의 높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물론 흥행이 곧 완성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열광하는 콘텐츠라면, 그 현상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는 있다. 대중문화의 성공은 단순한 소비를 넘어 사회의 불안과 욕망, 그리고 시대적 문제의식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최근 일부 평론가들은 이 드라마를 향해 거친 혹평을 쏟아냈다. 그 가운데 위근우 평론가는 "옥이 아니라 똥"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비평은 자유다. 메시지와 연출, 서사 구조를 비판하는 것 역시 평론가의 권리다.
그러나 비평의 본령은 해석이지 재단이 아니다. 특정한 가치관이나 이념적 관점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 창작물과 대중을 규정하는 순간, 비평은 설명보다 선별에 가까워질 수 있다.
위근우 평론의 가장 큰 한계 역시 여기에 있다. 비판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그 안에 공감한 수많은 사람들의 문제의식까지 함께 재단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참교육'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르포도 아니다. 교권 침해와 학교폭력, 교육 현장의 무력감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극적인 이야기로 재구성한 드라마다. 핵심 장치인 '교권보호국' 역시 실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설정이다.
시청자들 또한 그것을 모른 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액션 영화의 과장된 정의 구현을 현실의 법 집행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듯, 판타지 장르의 초현실적 설정을 현실 왜곡이라고 비난하지도 않는다. 서사 속 과장은 현실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장치다.
그런데 유독 '참교육'에 대해서만 현실 가능성과 제도적 정당성의 잣대를 우선 들이대는 것은 다소 불균형적으로 보인다. 드라마적 상상력을 현실 정책 제안서처럼 읽기 시작하는 순간, 정작 이 콘텐츠가 던지는 질문은 사라지고 만다.
그 질문은 단순하다.
왜 이 드라마가 이토록 큰 공감을 얻고 있는가.
지난 수년간 교권 침해는 우리 사회의 핵심 교육 현안으로 떠올랐다. 교사들의 극단적 선택은 사회적 충격을 안겼고, 반복되는 학교폭력 사건은 학교가 더 이상 안전한 공간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학부모와 학교 사이의 갈등 역시 끊임없이 이어졌다.
교사는 가르칠 권위를 잃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학생은 학교가 자신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학부모는 교육의 책임을 학교에 묻고, 학교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토로한다.
'참교육'은 바로 이러한 균열과 불신의 틈에서 등장한 문화적 산물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호응을 단순히 응징 욕망의 표출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접근일 수 있다. 오히려 이는 해결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답답함, 무너진 교육 질서에 대한 우려, 그리고 학교가 본래의 기능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사회적 열망의 표현에 가깝다.
교권 침해를 경험한 교사, 학교폭력으로 상처받은 학생, 교육 현장의 혼란을 지켜본 학부모들에게 '참교육'은 단순한 응징 판타지가 아니다. 쉽게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들에 대한 집단적 피로감과 무력감이 문화 콘텐츠를 통해 표출된 하나의 사회적 신호에 가깝다.
평론가라면 무엇보다 이 지점부터 읽어야 한다.
대중은 드라마와 현실을 구분할 능력을 갖고 있다. 모든 이야기를 현실 정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해소되지 못한 갈등과 문제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물론 원작 웹툰이 과거 체벌 및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던 사실은 비판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특정 논란의 존재만으로 전체 서사를 동일한 틀 안에 가두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한다. 창작물은 수정과 재해석을 거치며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부 비평은 이야기 자체에 대한 분석보다 '이런 드라마가 인기를 얻는 현실'에 대한 우려에 더 많은 무게를 두는 듯하다. 그러나 대중의 선택을 이해하기보다 경계하기 시작하는 순간, 비평은 해설의 영역을 벗어나 훈계의 영역으로 향하게 된다.
평론은 텍스트를 해석하는 작업이다.
훈계는 텍스트를 매개로 사람을 가르치려는 태도다.
둘은 결코 같지 않다.
물론 '참교육'이 완벽한 드라마라는 뜻은 아니다. 서사의 단순함이나 과도한 응징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는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전체를 향해 "옥이 아니라 똥"이라고 단정하는 평가는 비평의 언어라기보다 낙인의 언어에 가깝다. 완성도에 대한 평가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문제의식과 수많은 시청자가 공감한 이유까지 함께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흥행이 완성도를 보장하지 않듯, 평론가의 혹평 역시 절대적인 진실은 아니다.
결국 그 가치는 대중이 판단한다.
평론가는 그 판단을 돕는 길잡이일 뿐 최종 심판관은 아니다.
좋은 비평은 작품을 설명한다.
더 나아가 좋은 비평은 왜 많은 사람들이 그 서사에 공감하는지까지 설명한다.
만약 사회적 공감대를 읽어내지 못한 채 자신의 가치관만으로 재단한다면, 그것은 비평이라기보다 오독에 가까울 수 있다.
'참교육'을 둘러싼 논쟁에서 진정으로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문제는 드라마인가.
아니면 그 안에 담긴 사회적 불만과 시대적 요구를 외면한 채, 이를 단선적으로 읽어내는 시선인가.
▣ 칼럼니스트 한정근 | 아시아브랜드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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