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투표제 도입, 장점보다 단점 더 부각되며 각계각층 우려 커져

한시은 기자

sehan24@naver.com | 2025-03-19 13:52:24

[소셜밸류=한시은 기자] 최근 집중투표제 도입을 둘러싼 논의가 뜨겁다. 정부와 일부 주주 단체들은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고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집중투표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기업들은 경영권 불안정과 단기 이익 중심의 의사결정이 초래될 수 있다며 반대 의견을 내고 있다.


실제로 올해 주주총회를 앞두고 있는 주요 기업들 사이에서도 집중투표제 도입 여부가 중요한 안건 중 하나다. DB하이텍, 롯데쇼핑, 이마트, 코웨이 등의 주요 기업들이 행동주의펀드 및 소액주주들에게 집중 투표제 도입에 대한 요구를 받은 상태다.

집중투표제는 이사를 선임할 때 주식 1주당 선임하고자 하는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로, 소수주주가 지지하는 후보의 선임 가능성을 높일 수 있어 소수주주 보호 방안으로 활용된다.

집중투표제는 대주주가 지배하는 이사회 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해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또한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대주주의 높은 영향력을 제한할 수도 있다. 이를 통해 이사회의 구성원들이 보다 독립적인 입장에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기업의 거버넌스를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집중투표제는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명확하다. 집중투표제가 도입될 경우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주주 행동주의를 내세운 외부 세력이 집중투표제를 활용해 이사회를 장악하려는 시도를 할 수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기업의 경영 전략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또 단기적인 주주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의사 결정이 강화될 우려가 있다. 집중투표제로 인해 소수주주의 의견을 대변하는 이사가 이사회에 진입할 경우 투자가 필요한 사업보다는 주주들에게 즉각적인 수익을 안겨줄 수 있는 정책을 우선시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연구개발(R&D) 투자 축소, 고배당 정책 확대 등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으며 기업의 장기 성장 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특히 요즘처럼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시대에는 경영진이 장기적 전략을 바탕으로 시장 대응을 해야 하는데 집중투표제 도입으로 인해 단기 실적 중심의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경우 기업의 경쟁력이 저하될 수 있다. 이는 결국 기업 가치 하락과 주주 이익 훼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국내 기업 지배구조에서는 이미 3% 룰이 적용되고 있어 집중투표제 도입이 실효성이 낮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3% 룰은 감사위원 1명을 다른 이사와 분리 선출하도록 하면서,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제도로 감사위원을 선출할 때 대주주가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설계됐다.

3% 룰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집중투표제가 도입될 경우 대주주는 더욱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고, 반대로 특정 세력이 이사회를 장악하는 데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재계에서는 집중투표제가 오히려 소액주주의 보호보다는 특정 주주나 외부 투자자의 영향력 강화를 위한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기업 경영 전문가들 역시 집중투표제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한국 기업 환경에서는 부작용이 클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한 기업 관계자는 “특정 세력이 집중투표제를 활용해 경영권을 흔들 경우, 결국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 전략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며 “주주 권익 보호라는 본래 취지가 기업의 성장성과 충돌하지 않도록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달 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계를 대표하는 8개 단체가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포함한 상법 개정안 논의에 대해 강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며 정부와 국회에 철회를 요청하기도 했다.

경제계뿐 아니라 국내 법조 학계에서도 집중투표제 도입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국내 법조 학계에 따르면 집중투표제는 원래 공개된 주식회사가 아니라 소수주주가 공동 경영을 하는 폐쇄회사를 전제로 한 제도이고, 상장회사의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 소수주주에게 이를 인정하는 것은 이론상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집중투표제를 의무적으로 도입하는 국가가 많지 않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집중투표제가 완벽한 제도가 아니기에 미국에서도 일부 주에서만 시행되고 있으며, 주요국에서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관 ISS가 최근 집중투표제 도입를 둘러싸고 이슈가 되고 있는 코웨이 및 영풍 사례와 관련해 ‘집중투표제 도입을 주장하는 측의 제도 도입에 대한 설득력 있는 근거가 부족하다’라는 사유를 들어 반대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집중투표제 도입과 관련해 소액주주 보호라는 명분뿐만 아니라 기업 지배구조의 안정성,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 사회가치 공유 언론-소셜밸류.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