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반도체 패권 전쟁, ‘통제와 자립’의 충돌[2부]

미국의 칩 수출 통제가 불러온 반작용…중국, ‘화웨이·SMIC 체제’로 자립 가속
AI 반도체 전장은 이제 ‘규제 회피’와 ‘로컬 내재화’의 숨가쁜 공방

최성호 기자

choisungho119@naver.com | 2025-05-26 13:39:22

▲젠슨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GTC 2025에서 삼성전자 부스를 찾아 그래픽 메모리 GDDR7에 친필 사인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최성호기자

 

[소셜밸류=최성호 기자] 미국이 주도해온 글로벌 반도체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AI 반도체 시장의 절대강자 엔비디아가 중국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됐고, 중국은 자국산 칩 생태계를 빠르게 재편하면서 기술 패권의 중심축이 흔들리고 있다.


이는 단순한 수출 제한의 결과가 아니라, 국가 간 규제 경쟁이 산업 질서 자체를 바꾸는 전환점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엔비디아 퇴출 선언…美 제재로 500억달러 시장 손실

엔비디아는 최근 중국 관영지 글로벌타임스를 통해 “미국 정부의 승인 없이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된 상태”라고 밝혔다. 중국 시장은 전 세계 데이터센터 AI 칩 수요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 격전지다.

H20은 그동안 유일하게 중국에 수출 가능한 AI 칩셋이었으나, 미국 상무부가 이를 차단하면서 엔비디아는 완전히 발을 묶였다. 이에 엔비디아는 6월 출시를 목표로 ‘절충형’ 저가 모델을 긴급 개발 중이다.

◆반사이익은 중국 기업으로…화웨이·SMIC, 기술 내재화 속도

미국의 규제는 중국 기업의 자립을 오히려 가속화했다. 화웨이는 지난해 어센드 910B를 자체 개발해 고성능 AI 훈련용 칩 시장에 진입했고, SMIC(중국 반도체 파운드리)는 7나노 공정의 양산 실험을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 관영매체는 “미국의 규제로 인해 ‘엔비디아 vs 화웨이’의 전선이 기술력 중심에서 구조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중국은 국산 AI 서버, 국산 운영체제, 국산 모델 파운드리로 구성된 ‘디지털 자립 삼각축’을 구축 중이다. 이는 미국이 더 이상 공급망으로 중국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규제의 역설…美 기업만 고립되나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제재는 엔비디아, AMD, 인텔 등 자국 기업들의 해외 매출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AI 칩은 제품을 규제할 수 있지만, 서비스형 GPU 클러스터(AI as a Service)는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고 있으며, 이는 마이크로소프트·AWS 등이 ‘우회 수출’에 활용할 수 있는 틈새가 되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최근 대만에서 “(미국의) 수출 통제는 실패했다. 팩트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고 발언하며, 미국 내부에서도 규제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게임의 규칙이 바뀌었다

이제 미중 반도체 경쟁은 ‘누가 더 뛰어난 기술을 가졌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국가가 기술을 지키는가, 어떤 국가가 자체 생산 생태계를 완성하는가가 핵심이다. 글로벌타임스는 “미국은 더 이상 기술의 시차 우위를 유지하기 어렵고, 게임의 규칙 자체가 바뀌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기술 봉쇄가 아닌 기술 자립으로 이어지는 구조 변화, 즉 탈미국화된 기술 질서의 조짐을 뜻한다.

◆엔비디아 사태는 ‘시작에 불과’…패권 재편의 도화선 될 수도

AI 반도체는 기술력뿐 아니라 전략물자와 외교 수단이 된 시대다. 엔비디아 퇴출 사태는 단순한 수출 문제를 넘어,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지정학적 균형을 뒤흔 드는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될 수 있다.

미국이 자국 기술을 무기로 규제 카드를 꺼낼수록, 중국은 이를 내재화하며 ‘기술 자립형 국가’로 재편되고 있다. 진짜 전쟁은 칩 자체가 아니라, 칩을 둘러싼 규칙을 누가 쥐느냐의 싸움이다.

[ⓒ 사회가치 공유 언론-소셜밸류.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