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가치는 7% ‘급락’ 식품물가는 7% ‘급등’
원화가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폭 하락 ‘세계 7위’
점점 심해지는 푸드플레이션으로 식품물가 상승률은 ‘세계 3위’
미국경제 호황, 유럽·중동 전쟁 등 영향이라지만 정책 대처 시급
황인석 기자
alexh2@nate,com | 2024-04-21 11:57:23
[소셜밸류=황인석 기자] 미국 달러화 강세, 유럽·중동 전쟁 등 대내외 변수로 인해 원화 가치가 올 들어 7% 이상 하락해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하락폭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지난 2월 국내 식품 및 음료 물가는 7%가량 폭등했다.
21일 금융·외환시장,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지난 19일 달러당 원화 환율은 1,382.2원이었다. 지난해 말 1,288.0원에 비해 3개월여 만에 7.3% 급등(원화 가치는 하락)했다.
이에 반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2월 한국의 '식료품 및 비주류음료' 물가 상승률이 6.95%로 OECD 평균 5.32%를 웃돌았다고 발표했다. 푸드플레이션이 7%에 육박하는 셈이다.
우리나라 돈의 가치를 나타내는 원화 가치 하락 폭은 1990년 3월 시장평균환율제(1997년 12월 자유변동환율제)가 도입된 이후로 같은 기간 최대치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2009년 같은 기간에는 6.9%, 5.8%씩 하락했다. '외환위기 사태'가 불거진 1997년에도 1~4월 같은 기간 6%가량 하락했다.
원화 가치 급락은 글로벌 달러 강세에 따른 현상이긴 하지만 다른 나라에 비하면 특별히 원화 가치의 하락이 심각하다. 정책 당국의 미흡한 대처로 인한 한국경제의 취약성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물론 달러 가치의 상승은 미국 경제의 호황이 주요인으로 볼 수 있다. 미국 경제는 지난해까지만 하더라고 장단기 금리의 역전으로 올해 상반기 경기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오히려 나홀로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경제 금융 전문가들은 당초 올해 상반기 내에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경제 호황으로 인한 물가 하락 둔화 등의 현상 때문에 그 시기는 계속 늦춰지고 있다. 이러한 미국 경제의 신골디락스로 인해 금리 인하는 올해가 아니라 내년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오히려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이 금리를 낮춘다는 확실한 시그널이 나오고 금리 인하가 실행돼야 달러 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
이뿐 아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이란 보복전까지 유럽과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겹친 것도 안전자산인 달러 수요를 자극해 달러 강세를 촉발하고 있다.
이런 세계적 요인에 의한 달러 가치 상승을 고려하더라도 원화가치가 7.3%나 급락한 것은 달러 인덱스 하락분 4.8%에 비하면 원화 가치는 2.5%포인트 초과 하락했다. 우리나라 돈의 가치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더 값어치가 떨어진 것이다.
원화 가치 하락 폭은 연준이 달러지수를 산출할 때 활용하는 주요 교역국 26개국 가운데 7번째로 높은 수치다. 한국보다 통화가치가 더 크게 하락한 나라와 수준은 칠레 10.0% 일본 9.8%, 스웨덴 9.0%, 스위스 8.5%, 브라질 8.1%, 아르헨티나 7.6%이다.
문제는 또 있다.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 우리나라의 수출 가격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수출 경쟁 대상국인 일본 역시 '슈퍼 엔저'로 엔화가 9.8%나 급락하고 있어 일본과 경쟁하는 우리 수출품은 가격경쟁력 향상 효과를 누리기도 쉽지 않다.
원화 가치 하락으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는 찾기 힘들고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인한 전반적인 물가 상승이라는 부작용만 커지고 있는 것이 우리 경제의 현황이다.
이러다 보니 우리나라 먹거리 물가 상승률이 주요 선진국 평균 수준을 2년여 만에 다시 추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OECD에 따르면 지난 2월 한국의 '식료품 및 비주류음료' 물가 상승률은 6.95%로 OECD 평균 5.32%를 웃돌았다.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인 2021년 11월 이후 2년3개월여 만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2월 기준 우리나라의 식료품·비주류음료 물가 상승률은 통계가 집계된 35개 회원국 중 튀르키예 71.12%, 아이슬란드 7.52%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 세계(OECD) 3위의 물가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OECD 국가 식품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7월 9.52%로 10% 아래로 내려간 데 이어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수준인 5%대로 떨어지는 등 빠르게 정상화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 식품물가는 지난해 7월 3.81%로 바닥을 찍은 뒤 10월 이후 다시 5∼7%대로 올랐다. 지난 2월에는 마침내 OECD 평균치를 추월했다. 특히 지난달 사과값은 88.2%나 폭등해 1980년 1월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이었다.
문제는 식품 외에도 소비자 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는 요인이 줄줄이 대기 중이라는 점이다. 이스라엘-이란 충돌 이후 불안한 국제유가도 소비자 물가를 압박하고 있다. 또 강달러 기조에 따른 고환율은 수입 원재료 가격을 끌어올려 가공식품 물가를 더 상승시킬 수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 경제는 원화 가치 하락률 세계 7위, 식품물가 상승률 3위라는 불명예 타이틀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원화 가치와 식품물가가 점차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전반적인 글로벌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글로벌 경제상황에 대처하는 정책당국의 대응 능력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가 더욱 강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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