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식 초대전, 갤러리 일백헌 개최...'먹으로 그린 생명의 리듬'
한지원 기자
kanedu2024@gmail.com | 2026-05-30 11:37:07
서예가 정준식의 색다른 전시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글씨21은 5월 29일부터 6월 4일까지 갤러리 일백헌에서 '정준식 초대전'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전시장에는 서예가로 널리 알려진 정준식이 선보이는 수묵화 연작이 걸린다. 오랜 동양회화의 정신과 동시대 조형성이 어우러진 묵포도 시리즈를 통해 작가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엿볼 수 있다.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예술적 유산은 현재의 감각 속에서 새롭게 호흡할 때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디지털 이미지가 범람하고 새로운 시각 매체가 끊임없이 등장하는 시대에도 먹과 붓으로 표현되는 회화는 여전히 깊은 울림을 전한다.
정준식의 화면은 그러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전시장에 소개된 묵포도는 고전적 상징과 새로운 조형 언어가 만나는 지점에 놓여 있다. 동아시아 회화에서 포도는 풍요, 번성, 생명의 순환을 의미하는 소재로 사랑받아 왔다. 작가는 익숙한 상징을 단순히 답습하지 않고 자신만의 해석을 더해 새로운 이미지로 재탄생시킨다.
화면 속 열매들은 정적인 대상이 아니다. 크고 작은 송이들은 유기적인 리듬을 형성하며 공간 전체를 움직이고, 덩굴은 자유롭게 뻗어나가며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응축과 확산을 반복하는 형상들은 자연의 순환과 시간의 흐름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필선이 지닌 에너지다. 오랜 서예 수련을 통해 완성된 붓놀림은 단순한 묘사를 넘어선다. 힘 있게 내려앉는 선과 유연하게 흐르는 획은 서로 조화를 이루며 화면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선은 형태를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는 존재처럼 살아 숨 쉰다.
먹의 농도 변화 또한 깊은 인상을 남긴다. 짙게 응집된 흔적은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옅게 번져가는 흔적은 공기와 시간의 흐름을 암시한다. 단 하나의 색채만으로도 다양한 감정과 공간감을 구현해 내는 능력이 돋보인다.
여백을 활용하는 방식 역시 눈길을 끈다. 비어 있는 공간은 공허함이 아니라 상상의 영역으로 기능한다. 채움과 비움이 서로 균형을 이루며 관람객에게 사색의 시간을 제공한다.
특히, 올해 최고의 화제작으로 꼽히는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에서 이안대군(변우석 분)의 서예와 수묵화 대필을 맡은 그는 이를 계기로 대중과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수십 년 동안 붓과 먹을 벗 삼아 창작에 매진해 온 정준식은 한국 서단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으며, 수묵예술이 지닌 확장 가능성을 꾸준히 탐색해 왔다.
정준식이 서단 안팎에서 꾸준히 호평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옛 형식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고전의 정신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조형 감각을 적극 수용해 시대와 소통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오늘날 수묵예술이 지속적인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형식의 보존보다 본질의 계승이 중요하다. 정준식의 묵포도는 그 해답을 제시한다. 붓끝에서 시작된 한 획은 자연의 리듬으로 확장되고, 먹의 흔적은 시간과 정신을 기록하는 언어로 변모한다.
한편, 이번 정준식 초대전은 단순한 전시를 넘어 동양회화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조망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관람객들은 포도의 형상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생명의 움직임과 사유의 깊이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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