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호연 칼럼] ‘우아함’의 전제조건

한지원 기자

kanedu2024@gmail.com | 2024-10-01 11:18:38

▲ 사진=칸에듀케이션그룹 제공 

필자는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화학공학을 전공하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과제나 시험에서 ‘우아한’ 답안을 구했을 때다. 영어로는 ‘elegant’한 답안이라고 불렀다.

 

‘우아하지 않은 답안은 논리의 비약, 그리고 비상식적인 조건에 기초한 ‘억지’였던 반면, ‘우아한 답안’은 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멀리서 봐도 옳은 답의 자태를 뽐내었으며, 채점하는 교수님 또한 그 바름을 확인하는 데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 답을 제시하는 자와 평가하는 자가 진리 앞에 무언의 공감 하게 만드는, 울림이 큰, 감동적인 답안이었다.


물론 ‘우아한 답안’은 얻기 쉽지 않았다.
우아한 자태 아래에서 땀나게 물질하고 있는 백조의 발처럼, ‘우아하게’ 답변하기 위해서는 개념을 깊이 있게 공부해야 했고, 아집에 빠지지 않기 위해 친구들과 대화하며 다양한 시각을 고려해야 했으며, 간단명료한 흐름으로 설득하기 위해 표현을 수없이 다듬어야 했다. 그런 긴 시간의 노력과 생각이 담겼을 때, 비로소 ‘우아한 답안’이 허락되곤 했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의 정치는 우아하지 않다. 한 번이라도 상임위원회 회의가 생중계되는 것을 본 적이 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대부분의 국회의원은 증인에게 소리치고, 망신 주고, 말꼬리 잡기에 급급하다. 증인신문을 ‘우아하게’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대정부질문 때도 질문해야 할 사람이, 본인 얘기만 하고, 듣고 싶은 답변만 듣고 마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아하지 않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우아함의 전제조건인 백조의 발, 즉 ‘숨은 노력’ 없이 우아해 보이려고만 했기 때문이다. 준비가 너무 부족한 것이다. 준비가 부족하니 국정감사나 대정부질문에서 상대방이 뭐라고 답변할까 두려워한다. 두려우니 답변을 못하게 막는다. 질문을 아예 하지 않고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증인을 병풍처럼 세워놓기만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 사진=연합뉴스 제공

 

누가 설득되겠는가?
증인이 성심껏 답변한 내용을 종합했을 때, 내가 주장하는 바가 도출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줌으로써, 질문한 사람과 답변한 사람이 진실 앞에 무언의 공감에 다다르게 하는 것. 그것이 ‘우아한’ 심문이다.
 

물론 쉽지 않다. 그래서 준비해야 한다. 증인에 대해 깊이 있게 공부해야 하고, 사실관계를 반복해서 확인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논리적 비약과 사실적이지 못한 가정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부분들을 공략할 질문을 섬세하게 준비해야 하고,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답변이 나올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동료들과 치열하게 연습해야 한다. 그리고 본인의 의사전달이 정확하게 되도록 표현을 다듬고 또 다듬어야 한다.

 

처칠은 “나는 피, 노력, 땀, 눈물밖에 줄 수 있는 게 없다”라는 말에 본인의 진심을 담았다. 이 말로 자신을 믿지 못했던 보수당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사용해 영국인의 자부심을 자극함으로서 의회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처칠의 연설은 됭케르크에서 독일군에게 포위된 영국군을 구조해냈고, 나아가 영국을 세계 2 차대전의 승리로 이끌었다.

 

이런 설득을 위한 노력과 전략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우리네 정치다. 그도 그럴 것이,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 공부를 해오는 서양과 달리, 우리는 객관식 위주의 공부를 시킨다. 타인의 마음에 울림 큰 감동을 불어넣어 설득하는 것을 바라기에 무리가 있는 교육과정이다. 

 

반대되는 의견을 억압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한 것처럼 의견의 대립은 조화와 균형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대립 뒤에 억지‘만’ 있다는 것이다. 설득을 통해 사회를 조화와 균형으로 끌어나가는 정치가 없는 것이 문제다.

 

▲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금의 의료대란만 보아도 그렇다. 의과대학 정원을 늘리는 데 찬성하고 반대할 수 있다. 그러나 대립한 채로 갈라진 사회가 억지만 부려서 어떻게 발전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정부와 의료계처럼 ‘네가 먼저 양보해라’ 식의 억지스러운 태도는 우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국민에게 피로감만 더 해줄 뿐이다.


갈라진 양 측을 봉합하고, 설득할 수 있는 ‘우아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우아하기’ 위한 과정은 쓰다. 답이 보이지 않아 답답한 마음도 들고, 억지를 부리는 쉬운 길을 택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하지만 그 답답함을 이겨내고, 억지 부리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는 것이 실력이다.
 

대립과 억지에 지친 우리 국민에게 남다른 준비와 진심 어린 표현으로 ‘우아한’ 설득을 선사할 정치가 절실하다. BTS 의 노래에까지 담겨 세계인의 마음을 울린 “피, 땀, 눈물”이라는 구절을 만든 처칠과 같은 리더가 필요하다. 정치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냉소가 단숨에 들끓는 지지로 바뀔 것이다.

 

1940년 여름, 갈라졌던 영국 의회가 초당적으로 처칠을 지지했던 것처럼.

 

 

* 유호연
- 소셜밸류 발행인
- 칸에듀케이션그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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