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전구체 기술은 국가 핵심기술, 영풍·MBK 환영했지만 속내는 복잡할 듯

정부, 이차전지 전구체 기술 국가핵심 첨단전략기술로 지정
해외 인수합병·합작투자 시 ‘산자부 장관 승인’ 필수
시가총액 커 투자금 회수 난항 속 고려아연 자칫 희생양 우려

황동현 기자

robert30@naver.com | 2024-11-21 09:21:57

[소셜밸류=황동현 기자] 고려아연의 전구체 기술이 국가 핵심기술로 지정되면서 경영권 분쟁이 새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국가 경제·안보 사안’으로 해외 인수합병·합작투자 시 ‘산자부 장관 승인’이 필수인 데다가 고려아연 시가총액과 인수금액이 커 향후 '엑시트'에서 큰 부담이 생긴 만큼 사모펀드를 통한 인수전략을 구사하는 영풍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고려아연과 자회사인 켐코(KEMCO)가 함께 개발한 ‘니켈 함량 80% 초과 양극 활물질 전구체의 제조·공정 기술’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는 지난 13일 국가핵심기술과 국가첨단전략기술로 지정했다.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에 따르면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이 국가핵심기술을 외국 기업 등에 매각 또는 이전 등의 방법으로 수출할 때, 또한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이 해외 인수합병과 합작투자 등 외국인 투자를 진행할 때는 미리 산자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산자부 장관은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해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한 뒤 산업기술보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승인 여부를 최종 판단한다.

이에 따라 고려아연은 정부 승인 없이는 해외에 매각할 수 없게 됐다. 최근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이 모두 국내 기업에 매각된 점을 고려하면, 고려아연의 해외 매각은 사실상 어려워진 것으로 풀이된다.

일례로 국내 대형 전선회사인 A사는 2019년 보유하고 있는 ‘500kV급 이상 전력 케이블 시스템 설계·제조 기술’이 국가핵심기술에 선정되면서 당시 추진하던 해외 매각이 막혀 2년 뒤 국내 기업에 인수됐다. 또한 국내 대형 공작기계 회사인 B사도 보유하고 있는 ‘고정밀 5축 머시닝센터의 설계·제조 기술’ 때문에 중국과 일본 기업 등에 적극적으로 인수를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결국은 국내 기업에 인수됐다.

더욱이 고려아연이 보유한 국가핵심기술인 ‘니켈 함량 80% 초과 양극 활물질 전구체의 제조·공정 기술’은 우리나라가 이차전지 소재 산업뿐만 아니라 전방 산업인 전기차 산업에서 해외 의존도를 낮추고 자체적으로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데 꼭 필요하다는 점에서 해외 매각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시장 조사 기업인 크레딧솔루션에 따르면 전 세계 전구체 시장에서 중국 점유율은 85% 이상이다. 국내에서 중국산 전구체 의존도는 무려 97.5%(한국무역협회 기준)에 달한다.

지난 2022년 8월 JV(Joint Venture) 한국전구체주식회사(KPC)를 설립한 고려아연과 LG화학은 총 2000억원을 사업비용으로 투자했으며, 올해 3월 전세계 최초로 혁신 공정을 적용한 연간 2만톤 규모의 전구체 생산 공장을 완공했다. 또한 업계 최단기간인 시험 가동 2주 만에 시제품 생산에도 성공했다.

세계 최대 용량의 반응기 사용 등 전구체 생산을 위한 프로세스의 공정능력을 획기적으로 높인 공법을 전 세계 최초로 적용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를 통해 한국전구체는 중국기업 등 다른 경쟁사보다 고품질의 전구체를 생산하는 동시에 생산 효율성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해외기업과의 기술제휴가 아닌 오래 기간 축적한 글로벌 기술력을 보유한 순수 국내기업 간 협력으로 이뤄낸 성과로 중국 의존도가 절대적인 이차전지 핵심소재 ‘전구체’의 국산화와 국내 생산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도 큰 의미를 가진다.

 

▲울산 울주군에 있는 KPC 전경/사진=한국전구체 제공

 

시장에서는 MBK와 영풍이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M&A를 멈추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MBK와 영풍이 고려아연의 해외 우량 자산을 먼저 구조조정해 수익화를 도모하고 분할 매각 등을 활용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또한 고려아연을 세계 1위 비철금속 기업으로 만든 다른 중요 기술의 해외 공유와 수출 등 우회적인 방법으로 자금 회수에 나설 여지도 있다. 더불어 고려아연의 뛰어난 현금 창출력에 기대 대규모 배당 정책으로 막대한 현금을 챙겨 고려아연이 국가 기간산업으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 우려도 크다.

이번 정부의 조치와 관련해 MBK·영풍은 입장문을 내고 "전구체 기술의 중요성은 이차전지 시장에서 더욱 강조되고 있다. 고려아연의 전구체 기술이 국가 경제 성장의 원천 중 하나로 입증됐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이 꽃 피울 수 있도록 기업 지배구조를 신속히 개선하고 최대주주로서 고려아연의 핵심 기술이 해외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겠다"며 M&A 지속 속내를 드러냈다.

하지만 이번 고려아연 기술의 국가핵심기술 지정으로 향후 MBK와 영풍의 투자금 회수(엑시트)는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 않아도 20조 원이 넘는 고려아연의 시가총액과 대규모 인수 자금 때문에 MBK와 영풍의 투자금 회수 작업이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많았던 상황이다. 투자금 회수 작업이 지지부진해지면 그 사이 고려아연의 기업 가치는 크게 하락할 수 있다. 결국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고려아연이 가진 세계 최고의 기술력은 빛을 잃어버리고 그 기술력을 탐내는 기업들에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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