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내가 딸 결혼식에서 주례사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김완묵 기자
kwmm3074@hanmail.net | 2022-03-27 08:25:17
[소셜밸류=김완묵 기자] 딸 결혼식이 오는 4월 16일로 다가왔다. 3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하지만 첫 번째 대사인 데다 딸 결혼식이라서 그런지 심란한 구석도 피할 수는 없다.
딸 결혼식을 앞둔 아버지라서 그런지 '시원섭섭하겠다'는 말을 많이 한다. 처음에는 이 말에 많이 공감했던 게 사실이다. 이 말도 대체로 위로의 뜻이 내포된 섭섭함에 방점을 두고 건넨 말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렇게 섭섭해 할 일만은 아닐 듯해서 심란함의 무게는 덜해졌다.
요즘은 딸의 결혼이 출가를 의미하기는 하지만 외인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들 말한다. 딸도 출가외인이라는 말은 하면 질색을 한다. 예전처럼 남이 되지는 않는다는 소리로 읽힌다.
이 말을 위안 삼아 내가 딸 결혼식에서 주례사 역할을 한다면 들려줄 이야기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다만 딸 결혼식의 주례는 다른 사람이 하기로 돼 있어서 내가 실제로 주례의 자리로 나설 일은 없을 것이다.
우선 인생은 긴긴 여정의 마라톤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결혼 후의 가정도 마찬가지다. 이제 노년으로 접어들고 있으니 인생을 반추해볼 나이다.
뒤돌아볼 때 내가 너무 단기적인 승부나 관점에만 몰입해 세상을 너무 좁고 근시안적으로 바라보며 살아온 게 아니냐는 후회가 있다. 물론 순간순간은 결단을 내리고 결정을 지어서 행동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명확하게 길이 제시되어 있는 경우다. 누가 봐도 이런 판단을 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면 바로바로 결정을 해서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 옳다.
다만 인생에는 막연한 것을 나름의 판단력으로 결정해야 하는 경우들도 많다. 이런 경우 대개는 남의 의견을 듣는다거나 소문, 뉴스 등을 참조해 얼떨결에 결정하곤 한다. 결정하는 시간도 비교적 짧은 편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 자기의 중심이 서 있지 않다면 딸에게 나는 자기의 중심이 확고하게 설 때까지는 기다려봤으면 한다는 조언을 하고 싶다.
이런 방식이 부화뇌동을 줄여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기서 부화뇌동은 국어사전에 자신의 뚜렷한 소신 없이 그저 남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풀이돼 있다.
그리고 한번 판단이 서서 결정을 하면 일관성을 가졌으면 한다는 조언을 하고 싶다. 사랑도 그렇고 친구관계도 그렇다. 한번 배우자로 결정을 해서 평생을 살기로 했다면 인내하는 삶이 동반돼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울러 두 사람이 가야 할 직업의 세계도 그렇고 사업이라면 더욱 그렇다.
직장은 자주 옮길 수도 있다. 평생 일할 수 있는 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요즘 한 직장만을 고집하는 것은 실패의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직업이나 사업이라면 다르다고 본다. 뒤돌아볼 때 한우물을 판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성공한 경우가 많고 이를 끝까지 유지하는 확률도 높았다.
이게 일관성이 적어 자주 바꾸는 사람이라면 한두 번은 크게 흥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런 흐름을 끝까지 유지하는 사례는 많지 않았다.
왜냐하면 대체로 이런 사람들은 흥하는 직업이나 사업마저 자기 눈에 안 차서 또다시 다른 일에 눈독을 들이는 경우가 많고 이는 종래 실패로 이어지는 지름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은 마라톤이라고 했는가 보다. 60평생을 살던 옛 사람들도 이런 말을 했는데, 하물며 지금 100세 인생은 더 말을 해서 무엇 하랴.
직장생활 30여 년을 보내고 나면 또 다른 황혼의 인생 30여 년이 기다리고 있는 요즘. 전반전이 모든 것은 아니다. 후반전까지 생각하고 체력 안배를 적절히 하며 살아가는 인생이 그나마 잘사는 게 아닐까.
어마무시하게 길어진 오늘의 인생을 살아가야 할 딸에게 결혼 후의 삶은 30년이 아니라 60년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그래서 하루하루 마라톤 같은 인생을 살아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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