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안전성 검증 어려워, 가습기살균제 출시했을 것" 황당 변론...항소심 재판부는 달라야 한다
검증 어렵다면 제품 출시 말았어야, 세상에 나와선 안 됐던 제품..."단 한 명의 사망자라도 책임 물어야"
이호영 기자
eesoar@naver.com | 2022-08-28 07:42:40
[소셜밸류=이호영 기자] SK케미칼·애경산업·이마트·필러물산은 출시 전 제품 안전성 입증 책임을 피해자들에게 떠넘겼다. 그리고 뻔뻔하게도 안전하지 못한 제품을 출시했다손치더라도 제품과 피해자 사상 간 인관관계를 입증하지 못하니 무죄라고 주장한다.
형사 재판 상 죄를 성립 시키는 '엄격한 증명'은 한 사건에서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궁극적으로 정의를 이뤄내는 데 초점을 두고 있어야 한다.
지난 25일 변호인은 검찰과 쟁점을 짚는 가습기살균제 항소심 변론(SK케미칼·애경산업·이마트·필러물산 전현직 임직원 13명 피고)에서 "과학 기술의 비약적 발전 등이 이뤄진 현재까지의 흡입 독성 시험 결과에서도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면 2002년 재출시에 앞서 시험했더라도 피고인이 확인할 수 없었다는 게 확실하다"고 했다.
이어 "따라서 피고인은 제품을 그대로 제조, 판매했을 것"이라며 "결국 피고인에게 안전성을 검증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과실과 사상 결과 사이에 인과 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 변론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당시 유공은 세계 최초로 가습기살균제를 내놓으며 간이 동물 흡입 독성을 시험한 서울대 연구소로부터 안전성이 의심(독성 반응 확인)되니 추가 실험이 필요하다는 결과를 받았음에도 불구, 제품 출시를 강행했다.
안전한 제품을 내놔야 할 제조사가 안전성 검증이 어렵다면 당연히 제품을 출시해서는 안 된다. 간이 형태(이니 더더욱)라도 이 안전성을 의심할 만한 결과는 이미 나온 상황이었다.
그런데 변호인은 그런 제품 안전성 검증이 어려워 제품을 출시했을 것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펼친 것이다. 이 변론에서 변호인은 피고인의 '안전성을 검증하지 않은 과실'은 인정한 것이다.
이런 뻔뻔한 주장의 변론이 나올 수 있는 배경은 뭘까. 지금까지 재판부가 형법상 제조물 책임에서 인과관계를 확정할 때 '주의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은 죄'를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증유의 제품과 피해자 사상 간 인과관계만 따지면서다.
현재 재판은 안전성을 검증하지 않은 과실과 사상 간 인과관계를 밝히는 데 있지 않다. 따라서 저토록 자의적인 변론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옥시 재판 때도 나왔던 논리의 변론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이런 변호인단의 논리 내에서 주장을 검토했고 흡입 독성을 시험했더라면 유사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며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결국 피고인들은 출시 전 자신들의 안전성 입증 책임을 사상·사망 사고로 인한 피해자들에게 떠넘긴 상황이 됐다. 이 자체만으로도 불합리한데 지금까지 가습기살균제 재판의 초점마저 피고인들의 근본적인 잘못은 묻지 않고 있다.
형사 재판이니 '엄격한 증명'이 필요하겠지만 그 초점이 틀려선 안 된다. 무엇에 대해 '엄격한 증명'을 할 것인가. 여기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 현재 진행 중인 가습기살균제 재판 방식과 결과는 너무나도 중요하다.
재판부와 검찰, 변호인 모두 판례로 남아 대대손손 유사한 재판에서 진실을 가린 채 가해 기업의 죄를 제대로 묻지 않는 근거로 악용될 수 있음을, 그 무게를 엄중하게 직시해야 한다. 형사 재판상 '엄격한 인과관계, 증명'을 따져야 하는 만큼이나 이 재판이 지니는 무게또한 엄격하게 감당해야 한다. 재판하는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아니라고 해서 이 책임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다.
당초 가습기살균제는 이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됐을 제품이었다. 목숨에서 1명과 1000명의 차이가 있을까. 열보 양보해 CMIT·MIT 성분의 가습기살균제 단독 사용자만 본다고 치자. 피고인들이 내놓은 제품으로 인해 단 한 명의 단독 사용자라도 죽었다면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렇게 죽은 단독 피해자만 27명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목숨' 앞에 엄격해야 한다. 피해자가 형사 재판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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